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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골목식당’에서 배우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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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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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변한 거예요?” 백종원씨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하자 가게 주인은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껌벅인다. SBS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자주 본 모습이다. 백씨 도움으로 맛집으로 다시 태어난 가게에 손님들의 불만이 쌓인다는 소문이 돌아 제작진이 현장 점검을 한 뒤의 광경이다.

백씨 조언에 따라 메뉴를 싹 바꾼 충청도의 한 불고깃집은 음식에서 나쁜 냄새가 난다는 불평을 들었다. 현장 실사에서 오래 보관한 고기를 재료로 쓴 게 확인됐다. 주인은 이틀 전에 산 것이라고 했지만, 백씨가 가게의 구매 내역을 봤더니 거짓이었다. 모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장사가 잘되기 시작한 뒤로는 주인이 가게에 자주 나타나지 않고 직원에게 영업을 맡긴다는 소문도 사실에 가까웠다.

백종원 도움으로 손님 늘어나자
옛날 방식으로 돌아간 가게처럼
국민의힘도 다시 ‘꼰대당’ 돼가

백씨와 함께 새 메뉴를 개발해 손님이 줄을 서는 가게가 된 경상도의 한 분식집은 ‘1인 1라면’을 원칙으로 세워놓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가서 라면 하나와 김밥 하나를 주문할 수가 없었다. 결제액이 1만원 이하면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는 방문자들의 주장도 맞는 것이었다. 김밥에 톳을 넣는 것이 백씨가 제공한 ‘솔루션’의 핵심이었는데, 톳의 양이 확 줄어 있기도 했다.

손님 구경하기 어려운 가게가 백씨 도움으로 새 단장을 하고, 방송으로 유명해져 문전성시를 이루면 주인들이 눈물까지 흘리고 고마워한다.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면 안 돼유.” 백씨가 이렇게 말하면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백골난망이라고 한다.

‘골목식당’에 출연한 대다수 가게 주인은 벼랑 끝에서 살아났을 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열심히 장사한다. 하지만 회귀 본능에, 과한 욕심에 장사를 망치는 주인도 많다. 점차 식재료의 질에 신경을 덜 쓰고, 재료를 아끼고, 품을 덜 들이고, 손님의 반응에 무뎌진다. 심지어 음식 조리 방법이 가게에 파리만 날던 시절의 것으로 슬그머니 돌아가기도 한다.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과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관성의 힘이다. 결국 손님의 발길이 서서히 끊긴다.

“그동안 손님이 없어서 힘드셨지 않습니까? 나 같으면 손님이 이렇게 찾아와 주면 차를 타고 나가든, 새벽에 나가든 좋은 고기를 찾아 나설 것 같은데요.” “음식 맛은 조금 변할 수도 있어요. 진짜 문제는 마음이 변한 거예요. 손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어요. 사장님은 (방송 촬영 때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백씨가 자세가 달라진 가게 주인들에게 말한다.

백씨가 주장하는 장사 잘하는 비결은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①청결 ②친절한 응대 ③가성비 좋은 음식 ④참신한 메뉴 이름 ⑤집중과 선택의 메뉴 구성 ⑥상권에 따른 전략이다. 딱히 비법이라고 할 것이 없다. 열의와 손님에 대한 진심, 그 위에 약간의 기술을 더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사람이 변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힘은 대선·총선·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였다.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메뉴판을 갈아엎었다. 서울시장 후보는 연단에서 청년들이 먼저 말하게 했다. 두 달 뒤 당원들은 어떻게든 ‘꼰대당’의 틀을 버려야 한다며 전당대회에서 36세 청년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젊은이 입당 릴레이가 벌어졌다.

그렇게 음식과 손님 응대가 확연히 달라진 식당이 됐다. 때마침 집권 세력의 핍박에 시달리던,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전직 검찰총장이 합류했다. 집권당 후보에게 맞세울 후보가 마땅치 않던 차였다. 당의 지지도가 오르고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자 옛날 버릇이 되살아났다. 구주류 올드보이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총리도 하는 나이의 당 대표를 ‘어린애’ 취급한다. 젊은이들이 ‘도로한국당’이라고 부른다. 망하는 가게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인만 모르거나 모르는 척할 뿐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매번 이야기하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