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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계 유일’ 종부세 언제까지 이렇게 둘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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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기획재정부의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보도자료 첫 문장이 ‘전 국민의 98%는 과세대상이 아님’으로 끝난 것을 보면서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는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사자 우리에 던져진 그리스도인의 예를 들었다.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느끼는 황홀경의 합계가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합계보다 크다고 해서 이런 경기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피해자가 소수라고 해서 어떤 정책이 정당화된다면, 소수 재벌의 재산을 몰수해서 다수 국민에게 분배하는 것도 꺼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고유한 인격을 갖고 있기에 생명과 재산이 존중받아야 하며, 또 다수냐 소수냐를 가리지 않고 보호받아야 한다. 종부세 납부자가 전체의 2%라서 세금 부담을 마음대로 올려도 좋다는 것은 개명한 현대국가에서 통할 수 없는 논리다.

2%에만 물린다고 정당화 안 돼
‘가진 자’에 분풀이만 키우는 꼴

대상자 숫자보다 종부세가 합당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헌법이 규정하듯이 사유재산권은 공익적 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로 종부세를 정당화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그 고유한 정책 목표가 불분명하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종부세를 처음 도입할 때 상황과 논쟁을 돌이켜보면 이 세금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특정 지역 주택 가격을 낮춘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엉뚱한 궤변을 동원했다. 지금도 이 세금에 어떤 공익적 효과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가진 자에 대한 분풀이 효과는 있겠지만, 이는 콜로세움의 환호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집값이 올랐으니 세금을 좀 더 내라 하는 말도 있지만, 오른 집값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가 이미 있고 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재산 과세가 중복적으로 같은 목적으로 동원돼야 할 이유가 없다. 소득이 생겼다고 재산 과세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집값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데, 올라서 종부세가 정당하다면 내릴 때는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주나.

종부세든 뭐든 집값이 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금 부자를 빼면 누가 그 집을 살까. 다주택자의 임대 매물이 사라지면 선호도가 떨어지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대책이 되겠나. 일시적인 미분양 사태가 날 때 누가 매물을 소화할지 생각하면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세법 개정으로 종부세는 이제 다주택자와 법인의 주택 보유를 진압하는 몽둥이가 됐다. 그러나 다주택 보유자를 다른 말로 하면 임대주택 공급자다. 전체 가구 중 자가거주자 1146만 가구, 공공임대주택 거주자 166만 가구를 제외한 723만 가구가 민간 임대인으로부터 셋집을 구한다.

세금 지원 없이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주택자다. 이들의 행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시장이 요동쳐서 전·월세가 오르고, 전세가 월세로 전환된다. 집주인이 종부세 많이 낸다고 고소해 하는 사람들은 자기 전·월세 부담이 왜 늘어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다주택자가 밉다고 보유 과세 부담을 한없이 높이는 것이 용인될 수 없다. 조세 부담이 과중해 납세자의 재산 상태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면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의 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50%, 보증금에 대한 이자율이 1.5% 정도라고 보면 주택가격의 0.75% 이상의 세금 부담은 재산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과표가 시가에 근접해가는 마당에 최고 6%, 부가세를 합해서 7.2%에 달하는 세율은 선을 넘는 수준이다. 매년 원본을 잠식해 결국엔 국가가 개인 주택의 소유권을 가져갈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가 존립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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