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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인재 초격차’ 전략, 30대 사장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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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

삼성전자가 직급별 승진 연한을 없애고, 인사고과 때 동료평가제를 도입한다. 30대(代)에 국내 최고 기업에서 ‘별’(임원)을 달 수도 있고, 40대 최고경영자(CEO) 탄생도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식의 보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이재용식 인사 혁신안’이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래지향 인사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중앙SUNDAY 11월 13일자 12면〉 지난 2017년 승진 단계를 7→4단계로 단순화하고, 호칭을 ‘프로’ 또는 ‘님’으로 바꾼 지 5년 만의 큰 변화다. 삼성은 이번에 승진(승격)부터 양성, 평가 등 모든 인사 프로그램을 확 뜯어고친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선 현재 CL(커리어레벨)1에서 CL4에 오르기까지 각 8~10년인 직급별 승진 연한과 승급 포인트를 폐지한다. 대신 성과와 전문성을 검증하는 ‘승격 세션’을 도입한다. 이러면 우수한 인재가 근무 연차와 관계없이 발탁되면서 연공서열 문화 파괴가 가능해진다.

부사장·전무 직급은 부사장으로 통합하는 등 임원 직급도 단계를 축소한다. 삼성 관계자는 “상무가 실무 임원에 가깝다면 전무 이상은 의사결정을 하는 ‘CEO 예비군’으로 설정하고, 그 단계를 줄여 더 신속 과감한 승진이 가능한 구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만 60세인 정년 이후에도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 제도를 도입한다.

인트라넷에 표시되는 직급과 사번 정보를 없애고, 매년 3월 공개하던 승격자 발표도 따로 하지 않는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한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제도도 있다. ‘사내 FA(자유계약) 제도’는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또 국내·해외법인 간 교환 근무를 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를 신설해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울 계획이다.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카페·도서관형 사내 자율근무존을 마련하는 것 역시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위한 것이다.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제도 밑그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제도 밑그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사고과도 완전히 새롭게 개편한다. 현행 상대평가 방식에서 성과에 따른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동기 부여를 위해 꾸준히 고성과를 받는 직원에게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을 넘어서는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삼성전자 측은 “다만 최상위 평가는 기존처럼 10% 이내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과관리 개편에서는 ‘동료 리뷰’ 도입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자칫 인기투표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해 당분간 등급 부여 없이 서술형으로만 평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이번 삼성의 인사 개편에 대해 이 부회장의 제시하는 ‘뉴삼성’을 위한 행보로 해석한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선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인재제일’ 철학을 이어받은 이 부회장이 ‘뉴삼성’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혁신이 필수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회사는 개편을 예고하면서부터 노사협의회, 노동조합, 조직문화 담당자 등 1000여 명의 의견을 청취해 개편안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삼성전자의 4개 노동조합은 협의과정에서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무한경쟁과 불공정한 문화를 강화하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인력이 유출되고, MZ세대 직원의 소통 욕구가 커진데 따른 위기의식이 반영된 듯하다”며 “사내 FA, 절대평가 확대, 패스트 트랙 강화 등은 글로벌 트렌드”라고 평가했다. 이어 “개편안을 넘어 노사 모두 처절하고 절실한 글로벌 환경에 대해 공감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임원 직급 단순화, 동료평가 등은 이미 다른 대기업에서 먼저 시도한 바 있다”며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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