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홀로서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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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도시나 가로수 하나를 보면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파리의 가로수들은 화장을 잘한 귀부인 모양으로 품위가 있다. 마로니에의 넓다란 잎사귀들은 영양이 좋아 윤기가 흐른다.
파리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서 차도 마시고,담소도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런 파리를 덩달아 좋아한다.
뉴욕의 가로수도 늠름하고 울창하기로는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아침 나절이면 시청의 물차가 한바퀴 돌면서 물을 준다. 맨해턴의 빌딩 숲속에서 자라는 가로수들은 아무래도 햇볕이 모자란다. 그래도 볼품없이 죽어가는 나무는 없다. 나무마다 자원 책임자가 있어서 돌본다.
런던이나 로마같은 도시의 가로수들은 기골이 장대해 관록이 있어 보인다. 로마 테베레강을 끼고 좌우에 늘어진 플라타너스의 가지들은 춤을 추듯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어 장관이다. 누군가 몇십년을 두고 여간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그런 모양을 낼 수 없다.
그러나 이들 도시의 나무들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전문가의 손길보다는 시민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로수들을 한번 눈여겨보라. 줄기에 상처없는 나무들이 드물다. 나뭇가지는 되는대로 꺾여 껍질이 벗겨진 것은 예사다. 도무지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흔적을 보기 어렵다.
사람도 아낄 겨를이 없는데 언제 나무를 사랑하라는 말이냐고 한다면 또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연을 아끼는 생활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변두리,가령 자동차 수리점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기름때가 묻고,그 밑동엔 기름이 부어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화공약품을 파는 가게 앞의 가로수도 비실비실한다. 시민의식이 그정도다.
게다가 아스팔트 공사다,배관공사다,건축공사에,전기공사하는 사람들의 거친 손과,예산없다는 관청의 핑계마저 한수 거들어 나무들은 상처투성이요,탁한 공기 속에서 고달픈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나 다를까,서울의 가로수들은 8월부터 낙엽이 지고,20년도 넘은 8백여 그루의 나무들은 말라죽기 직전에 있는 모양이다. 볼품 있으라고 뿌리 위에 덮어놓은 철제 보호판마저 빗물 흡수를 막아 나무의 명을 재촉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 덕에 우리나라 도시들은 모처럼 가로수며,화초들로 치장했는데 그나마 제대로 간수를 못해 죽여버린다면 올림픽 치른 문화시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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