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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 위해 공공임대주택 획기적으로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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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권인원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권인원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10월 중 서울의 아파트 매매 가격이 평균 12억1639만원으로 나타났다.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5억 원대에 머물렀던 것이 2배 넘게 상승했다.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이용해 주택 공급 부족을 틈탄 투기 바람이 불고, 실수요자들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에 불안감을 느껴 많은 빚을 내면서까지 집 구매에 나서며 연쇄적 가격 상승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은 세 가지 문제를 부른다. 첫째, 가처분소득이 대폭 감소하고 주거 비용이 소득을 초과할 정도로 높아졌다.

유휴지 등에 공공임대주택 짓고
다주택자 보유세 높여 처분 유도

예를 들어 6억원 집을 매입할 때 기회비용은 연 1800만원(이자율 3% 가정)에 달한다. 만약 집을 사지 않았다면 그 돈을 다른 곳에 운용해 수익을 낼 수 있고 대출 빚을 갚아 이자 비용을 줄일 수도 있는데, 집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한 대가가 연 1800만원에 이른다.

또 집값 상승은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집값이 1억원 오를 때마다 가처분소득은 연간 300만원씩 감소한다. 서울시 평균인 12억원 아파트의 경우 기회비용·재산세·관리비를 포함한 비용이 연 4300만원을 넘어섬으로써 생존을 위한 주거의 대가가 연 소득을 초과할 정도가 됐다.

둘째, 무주택자나 청년층에게 내 집 마련은 ‘넘사벽’이 됐다. 예를 들어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부 집 구매에 충당한다 해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40년이 걸린다. 연간 저축액이 2000만원이라면 60년으로 늘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출산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고, 똑같은 집을 수억 원을 더 주고 사야 하는 현실은 좌절감을 넘어 분노를 불러오기도 한다.

셋째, 현재 집을 가진 사람도 집값이 올랐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다. 집값이 올라 부자가 된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집 한 채 가진 사람은 집값이 올라도 그 집을 팔아 이익을 내는 것이 어렵다. 당장 살 집이 있어야 하기에 집값이 오르건 내리건 평생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부담만 커진다. 재산세와 건강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이다. 집값이 6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오를 경우 재산세는 연간 250만원, 지역 가입자의 건강보험료도 연 50만원 정도 오른다.

결국 집값이 뛰면 투기꾼과 다주택자만 폭리를 취할 뿐, 무주택자나 청년층은 물론 주택 보유자까지 모두 피해자가 되고 삶이 피폐화된다. 지금 주거 시장 기능은 완전히 실패했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가 강하게 개입하는 ‘혁명적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선의의 피해자인 실수요자에 대해 집값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먼저 1주택을 넘는 초과 주택 보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 초과 보유 주택의 신속한 처분을 끌어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 보유세 중심의 강도 높은 과세가 필요하다. 다주택자 보유 주택이 시장으로 흘러나오게 되면 현재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으므로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 요인은 빠르게 해소될 것이다.

더불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정부 소유의 골프장·유휴지는 물론 보존 가치가 적은 그린벨트 지역 등에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신혼부부 등에게 실비로 공급해야 한다. 이렇듯 주거 안정을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확인되면 주택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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