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정책 어젠다 ⑧ 기후변화분과 제언-온실가스 감축 정책
지난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공개한 제6차 평가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이상으로 상승할 경우 극심한 폭염과 가뭄, 폭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IPCC는 2018년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순(純)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의미다.
석탄발전 2040년 이전에 폐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지속
에너지 마스터 플랜 다시 만들고
소형 모듈 원전 투자 여부 검토를
대통령, 기후문제 직접 챙겨야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 병행
정부 바뀔 때마다 기후정책 달라져
탄소 중립은 국제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한다는 국가 감축 목표(NDC)도 확정했다. 문제는 이러한 2030 감축 목표와 2050 탄소중립을 어떻게 달성하느냐다. 기후변화 분과 위원들은 차기 정부에서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 것이냐를 두고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유연철 기후변화분과 위원장(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은 “과거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후변화 정책은 일관성 없이 진행됐는데, 차기 정부는 현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을 지속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탄소중립은 이제 국내 의제가 아니라 국제 의제가 됐고, 기후 위기는 인류 생존의 문제이고, 2050 탄소 중립은 국가 경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 현 정부도 감축 계획은 발표했지만, 실제 감축 노력은 강하게 추진하지 않아 감축 성과는 미미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는 “2030 국가 감축 목표나, 2050 탄소 중립 약속을 고려하면 새 정부는 당장 1년에 4~5%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로드맵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무엇보다 석탄 발전의 조속한 폐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 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2030년대까지 석탄발전을 폐지하자는 ‘탈석탄 선언’에 공식 서명하고도 구체적인 탈석탄 시점에 대해선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에 있어서 이념적인 논쟁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탈석탄 부분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그 이전에 석탄발전 폐지가 필요하다. 한국기후환경회의에서도 시민 패널의 의견을 모아 2040년 석탄 발전 폐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건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퇴출 시점을 정치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2040년 석탄 발전 퇴출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탄소 경제 모델링 분석을 해보면 2040년이 매우 적정한 퇴출 시점이라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2040년 석탄 발전 퇴출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분과 위원들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더불어 탈원전 정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유 위원장은 “총체적인 에너지 마스터 플랜 하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고, ‘소형 모듈 원전(SMR)’의 개발과 투자 여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없어지는 분야 지원해야
위원들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김승래 한림대 교수는 “에너지 전환과 산업구조 전환으로 인해 일자리가 창출되는 분야도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지는 분야도 있다”며 “지역사회 불평등이 더 심해질 수 있는 만큼 그런 지역에 좀 더 지원을 해주고, 중소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중앙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위원들은 정부에 대해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거버넌스 확립을 주문했다. 유연철 위원장은 “기후 변화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며 “청와대 기후담당 수석 비서관이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정부 관련 부처와 탄소중립위원회(중앙~지역)가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래 교수는 “기후에너지부가 하나의 부처로 들어서고, 거기에서 종합적으로 기후와 에너지와 관련한 모든 정책을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며 “탄소중립도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던 것처럼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과 경제를 별도로 볼 게 아니고, 국가 경제 생존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들은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강화하고, 탄소세도 병행할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김용건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은 배출권 거래제이고, 이 틀을 이용해 국가 총배출량의 70%를 이미 총량 규제하고 있다”면서 “배출권 시장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력시장 왜곡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높아지건 낮아지건 무관하게 석탄발전을 돌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력 가격에 배출권 가격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배출권 구매 비용까지 보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 시정돼야
유승직 교수도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 할당량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며 “앞으로 최소한 전력 부문에서는 배출권을 유상 할당한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에 탄소 가격이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승래 교수는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보급이나 탄소 포집·저장 등도 중요한데, 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세에 의해 탄소 가격이 높게 형성돼야 이런 부분이 활성화할 것”이라며 “탄소세를 도입할 때는 효율성·형평성·환경성의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송·산업·발전·가정 등 모든 부문에 과세하면 연간 약 17조 정도 세금이 생기고, 온실가스는 약 6.5%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게 김승래 교수의 설명이다.
유연철 위원장은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산림 조성·관리 비용, 온실가스 포집·사용·저장 비용 등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는 수준은 물론 이미 배출돼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까지 흡수·제거하는 비용까지 확보하기 위해 탄소세 세율을 높여나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순환경제의 확립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안지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단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심각해진 폐플라스틱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분과 위원들의 제언
“기후 위기는 인류 생존의 문제이고, 2050 탄소 중립은 국가 경제 생존이 걸린 문제다. 기후변화 문제는 청와대에 기후 담당 수석비서관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하는 이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새 정부는 탈(脫)석탄을 이른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원 믹스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천연가스·원전·재생에너지를 각각 어느 정도 비중으로 가져가면서 산업 전환을 끌고 갈지 정해야 한다.”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에너지 전환으로 산업과 가계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탄소세를 도입할 때 효율성·형평성·환경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김용건 한국환경연구원 탄소중립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서 정부의 부적절한, 불투명한 개입을 없애고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 둘 중에서 뭐든지 하나라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지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탄소광물화 사업단장
“탄소 중립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취약 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저탄소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신 유망 산업을 육성해서 순환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
“새 정부는 당장 1년에 4~5%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전뿐만 아니라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로드맵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