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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올리고 청년수당 신설…소득격차 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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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차기 정부 정책 어젠다 ⑨ 불평등분과 제언-양극화 해소

시장 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이 지난달 30일 한산한 모습이다. [뉴시스]

시장 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이 지난달 30일 한산한 모습이다. [뉴시스]

델타 변이보다 전파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으로 세계가 다시 비상이 걸린 데에서 보듯 코로나19 위기는 장기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코로나19 관련 국민 인식조사를 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 1순위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은 응답이 53%로 가장 많았다.

소득 불평등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은행(고용분석팀 송상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4분기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소득은 전년 대비 1.5% 줄어든 반면 하위 20%인 1분위 소득은 17.1%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경제불평등 깊어져
‘K자형 양극화’가 사회불안 유발

노인·청년·아동 포괄한 정책 시급
한시적 사회연대세로 재원 마련

아동기 주거·건강이 평생을 좌우
정부 각 부문 협력체제 마련해야

불평등의 원인은 일자리 불안이었다. 소득 1분위 중 비취업 가구 비중이 전년 대비 8.7% 늘었는데, 특히 한창 일할 30~54세 저소득층의 실직이 두드러졌다. 특히 대면 접촉이 잦은 업무를 하던 임시·일용직이 일자리를 잃은 경우가 많았다.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도 뚜렷했고, 양육 부담이 큰 여성과 유자녀 가구가 고용 충격에 취약했다. 위기에 처한 저소득층의 소득은 최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반짝 오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선 코로나 극복을 위해 각국이 쏟아낸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졌다.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에서도 직종·학력에 따라 차이가 나는 ‘K자형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집값이 폭등한 국내에서도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청년수당 분기별 50만원 지급 고려

리셋코리아 자문위원들은 코로나의 영향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등과 차이가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취약 계층과 갑작스러운 대유행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임시·일용직, 1인 자영업자 등 근로 빈곤계층뿐만 아니라 중견기업 근로자 등 중간계층의 고용과 소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 정책의 방향 역시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중심에서 나아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소득보장 정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분위별 가구소득 감소율

소득분위별 가구소득 감소율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의 세습이나 ‘흙수저’ 논란에서 보듯 최근의 불평등은 상대적 빈곤을 뜻한다”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국가’를 목표로 공정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셋코리아 불평등분과는 이를 위해 차기 정부에 제안할 과제를 꼽았다. ▶기초연금 10만원 추가 지급 고려 ▶코로나 같은 위기 시 생계·의료·주거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긴급복지지원제도 중위소득 90% 이하까지 확대 고려 ▶청년희망수당 1인당 분기별 50만원 지급 고려 ▶교육 단계별로 만12세 미만, 만15세 미만, 만18세 미만 등 아동수당 확대 고려 등이다.

자문위원들은 노인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연금이 최대 30만원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노인 40%가 빈곤 상태임을 고려하자고 했다. 조건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탈락하는 다른 제도와 달리 긴급복지지원제도가 그나마 가장 빠르게 지원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이므로 이를 확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청년희망수당제도와 아동수당 제도 확대는 국민통합을 위한 사회연대 수당제의 성격을 띤다. 젊은층에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주기 위한 수당은 고교 졸업 등 자격을 갖추고 범죄 이력이 없는 청년에게 첫 취업 전 30세까지 국가가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동수당은 현재 7세 미만인데 보육의 국가적 책임을 분담하자는 취지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한시적 사회연대세를 걷는 방안이 제시됐다. 김 교수는 “다른 곳 예산을 줄여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포괄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면 사회연대세를 목적세로 걷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이 있을 때 한시적으로 5년 아니면 10년 기금 형태로 모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도 “기본적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가구원수 중심 지원정책 재검토를

불평등은 순환 고리 형태로 가속하는 속성을 보인다. 소득 격차 증가→자산 불평등→거주 지역과 주거 형태의 불평등→교육 불평등이 다시 소득 격차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자문위원들은 특히 한국에서 거주 지역과 주거 형태의 불평등이 나머지 모두를 결정하는 양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에 살면 더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면 소득을 더 얻을 수 있어 자산의 불평등으로 연결되는데, 그 결과 또다시 강남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가 부동산인 것도 한국적 불평등 구조와 무관치 않다.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 불평등은 아동기에서 시작되는 고질적인 특성이 있다”며 “최근 청년 주거 불평등에 많은 관심이 쏠리지만, 실제 주거 빈곤 청년층을 만나보면 대부분 이미 아동기 때부터 주거 빈곤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송 교수는 “한국은 주거급여를 줄 때 단순히 가구원 수만 따지는데 핀란드·영국·독일 등은 아동이 있는 가구를 따로 고려한다”며 “국내는 주거상실 위기 가구에 대한 긴급복지제도도 대부분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디자인돼 있어 아동이 있는 가구가 위급할 때 도움받을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영·유아 건강관리 확대해야

건강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초기 아동기 관리가 중요하다.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미숙아·저체중 발생률은 부모 학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두 가지가 겹치면 사망률이 15배 높아진다”며 “초기 아동기 사망 불평등은 생후 1달에서 만 5세까지 지속해서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태내 영양 결핍은 노년기 당뇨병 발생률에 영향을 주고, 똑똑하게 태어난 아이들도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런데도 국내에선 보육과 교육 부문에서만 다룰 뿐 만2세 이하 초기 아동기 발달 건강 관리가 공백 상태”고 말했다. ▶보편적 방문형 산모·영유아 건강관리 사업 확대를 통한 위험 아동 조기 발굴 및 관리 ▶발달 장애 아동 조기 개입을 위한 전문서비스 구성 및 건강보험 급여화 등이 과제로 꼽혔다.

이번 대선에선 20대를 중심으로 한 젠더 갈등이 선거 이슈로 불거졌다. 공정이나 불평등 이슈와 맞물리면서 온라인에는 차별과 혐오 표현이 넘쳐난다.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는 “20대 남녀는 소통 공간 자체가 온라인에서 양분돼 있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편향이 강화되므로 디지털 기술에도 문제가 있다”며 “빅데이터,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의 분야에서도 혐오와 편향이 논란이  뜨거워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가 태어나던 시기에 여야 낙태가 많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여파로 남녀가 짝을 맺기 어려워졌고, 남성 간에 경쟁이 격화했다. 일자리를 둘러싼 남녀 갈등 와중에 20대 여성들은 문제를 겪으면 자살을 택하는 비율이 높다. 정 교수는 “단순한 성별 갈등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과제로 젠더 불평등 갈등을 다뤄야 한다”고 했다.

모든 정책에 통합사회영향평가 도입

자문위원들은 부처별 통합과 협업이 안 돼 예산만 낭비되고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가령 취약계층 주거 공급은 국토부가 맡고, 사회복지는 복지부 담당인데 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비효율을 막기 위해 부처를 초월해 불평등과 다양성 이슈를 추진할 주체로서 가칭 ‘평등과 다양성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기저를 핵심 과제로 삼고 다부문적인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모든 정책에서 불평등이나 차별,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 점검하는 ‘통합사회영향평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분과 위원들의 제언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분과장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것보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정책 설계 시 취약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토하는 등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안나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1세기의 불평등은 상대적 빈곤, 기회의 불평등이 핵심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 갈등, 정년 연장, 청년 일자리, 여성,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한 국민적 대타협이 시급하다.”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새 정부에선 불평등과 빈곤, 차별까지 측정하는 ‘통합사회영향평가’를 도입하자. 런던시는 모든 정책에서 건강영향평가, 성 평등, 환경영향평가, 지역사회 안전 등 4가지를 본다.”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성인이 겪는 여러 불평등은 아동기 때부터 시작된다. 주거 빈곤 아이들이 사는 곳은 지역 빈곤율이 높고 교통이 불편하며 놀이터도 부족하다. 아동기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인공지능·메타버스 기술도 기존 불평등을 증폭시킨다. 많은 예산을 받는 과학기술 분야는 돈 되는 개발 경쟁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평등을 위한 포용적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

홍영표 시카고 로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홍영표 시카고 로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홍영표 시카고 로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비전으로 삼자. 흔히 말하는 기득권층도 소외 계층으로 빠져나가 사회통합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들이 가진 자본을 사회에 투자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