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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모국어 잃었지만 김치만큼은…한식 명맥 잇는 고려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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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30)


고려인의 부엌, 국시와 빵(下)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현지식으로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민족의 전통 식습관을 간직하고 있다. 음식은 우리를 역사와 이어준다고 했던가. 음식에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추억을 회상하거나 고향의 맛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고려인은 그렇게 음식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고려인은 가족 유대감도 강하다.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와 차별,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슬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국가가 아닌 오직 가족뿐이라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대가족 제도가 살아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독립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겠지만, 가족의 중요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마음이 크다.

고려인은 모국어를 잃었을지언정 한국 음식의 명맥은 잃지 않았다. 음식의 기본 구성도 여전히 동일하다. 밥, 국, 김치, 된장, 두부, 각종 나물 등의 반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명칭은 생소하다. 이를테면, 밥이물이(물에 말아먹는 밥), 배챠짐치(배추김치), 미역장물(미역국), 시락장물(시래기된장국), 반찬(식해), 북자이(된장찌개), 자이(된장), 왜(오이), 가지채(가지무침), 배고자(왕만두) 등이 고려말 표현이다.

고려인 음식이 반대로 중앙아시아 현지에 영향을 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모르코브채(морковь-чя)와 고려국시를 들 수 있다. 모르코브채는 현지에서 ‘카레이스키 살라드’로 불릴 정도이다. 모르코브는 당근을 러시아어로 부르는 말이며, 채는 길쭉하고 잘게 써는 채소로 고려인이 쓰는 용어이다. 고사리채, 매기채(미역), 콩나물채, 감자채 등으로 부른다.

모르코브채는 고려인뿐 아니라 이제는 중앙아시아 국가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됐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이주 초기,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당근으로 김치를 만들었다. 당근을 채 썰어서 소금과 식초 등의 양념을 버무려 새콤달콤하게 만든 것이다. 모르코브채는 주로 기름진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소련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현재 구소련 지역의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재래시장(Базáр)에서 모르코브채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했다.

모르코브채, 중앙아시아 재래시장인 바자르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사진 Tolkuchka Bazaar on Wikimedia Commons]

모르코브채, 중앙아시아 재래시장인 바자르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사진 Tolkuchka Bazaar on Wikimedia Commons]

고려인은 국수를 국시라 부른다. 한국식 잔치국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고명이다. 고려국시는 오이채, 버섯채, 토마토, 고기, 김치 등 ‘추미’라고 불리는 다양한 고명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 따뜻하게 먹기도, 차갑게 먹기도 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의 다른 민족들도 국시를 고려인의 발음 그대로 ‘카레이스키 국시(корейский кукси)’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인 음식 중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광주 고려인 마을의 대모인 신조야 (67세·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대표가 국시 요리를 하면서 설명해주었다. “한국의 잔치국수를 먹어 봤는데 반찬이 적게 들어가니까 국수 맛을 모르겠더라고요. 우리는 반찬이 많이 들어가요. 국시 위에 올라가는 반찬을 추미라고 해요. 추미는 두세가지는 꼭 들어가야 해요. 원래는 우리가 국시를 만들 때 고수도 들어가고 질(우끄롭. укро́п)도 넣어요. 만약에 고수가 없으면 상채(향채) 가루라고 있어요. 그 씨를 말려서 볶아 갈아낸 게 있는데, 그게 또 고수 냄새가 나요. 국수물에 질이 들어가야 짠한 맛이 나요. 그런데 그건 냄새가 독해 한국사람 먹는 거에는 안 넣죠.”

국시는 잔치음식이다. 돌잔치, 생일, 결혼식, 환갑잔치 때 국시를 먹었다. 잔치를 하게 되면 국시 외에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쌀로 만든 요리로 찰떡과 증편, 과줄(한과의 일종)이다. 기쁜 일이나 좋은 잔치에는 모두 상에 올리지만 장례식이나 슬픔을 나누는 의례에는 증편과 찰떡을 올리지 않았다.

국시분틀로 면을 뽑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 1950년대 초반 사진(좌). 2019년 사진(우). [사진 김병학(월곡고려인문화관), 김상욱(알마티고려문화원)]

국시분틀로 면을 뽑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 1950년대 초반 사진(좌). 2019년 사진(우). [사진 김병학(월곡고려인문화관), 김상욱(알마티고려문화원)]

중앙아시아의 매서운 겨울 날씨에는 채소와 과일이 생산되지 않는다. 겨울을 무사히 나고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 고려인은 다양한 저장음식을 발달시켜 왔다. 우리와 같이 김장을 담그기도 했지만, 토마토나 오이로 절임을 만들거나 다양한 과일로 잼을 만드는 차이가 있다.

현재에도 우슈토베(고려인이 중앙아시아에 처음 정착한 지역)나 알마티 근교 고려인이 사는 주택을 가면 마당 한쪽에 감자굴이나 김치굴을 볼 수 있다. 땅속 저장고로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이나 저장음식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러한 땅속 저장고를 뽀그립(погреб)이라고 한다. 보통 어른 키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 벽면은 벽돌이나 시멘트를 발라 마감하고 공기 구멍을 내며, 천장은 철판으로 덮는다. 벽에는 다양한 수납장을 만들고, 수납장에는 주로 살구잼, 오이 및 토마토, 양배추를 절인 저장음식을 유리병에 밀봉해서 쌓아놓는다.

중앙아시아에는 한국에 한 번도 오지 못한 고려인도 많다.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고려인에게 한국에 가면 무슨 기분이 들 것 같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집에 가는 기분”일 거라고 답했다. 같은 밥상을 차리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 우리는 그동안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 ‘외국인 근로자’로만 바라보지는 않았던가. 그네들도 김치 없으면 상 앞에 앉지 못하는 같은 민족인데 말이다.

유랑의 세월을 살아온 고려인, 그들의 종착지가 광주의 고려인 마을이 될 수 있을까.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열차에 몸을 싣고 텐샨산맥이 둘러싼 초원으로, 그리고 다시 모국을 찾기까지 한 세기하고도 반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재외동포에 대한 지원 정책이 날로 좋아진다고는 하나 이들의 한국 생활에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국이 이들에게 또다시 시련을 안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려인이 언제쯤 편안함에 이를까.

냉장고 인류: 차가움의 연대기.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칼럼을 담았다. [사진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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