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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9:32:14

[더오래]노년의 냉장고, 2000 kcal와 0 kcal 사이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10:00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27)

“당신은 노후에 어떤 냉장고를 소유할까요?”

노년의 삶을 연구하는 작가가 있다. 이미화 작가는 ‘잘 마무리하기 위해 잘 존재하기(Being Well to End Well)’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한다. 경기도 안양을 거점으로 ‘이모저모도모소’라는 열린 공간을 만들었고, 지역의 홀몸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니어 문화예술 콘텐츠, 시니어 굿즈 개발 등 다양한 소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과 사물의 다양한 면인 ‘이모저모’를 기획하고 ‘도모한다’는 뜻으로 ‘이모저모도모소’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녀는 ‘냉장고 환상’ 기획전시(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노년 세대의 사회적 이슈를 시각화한 오브제 설치 작품 ‘2000kcal-0kcal’를 보여주었다. 노인 1일 평균 칼로리 권장량으로 규정된 2000kcal와 생의 마감을 은유하는 0kcal, 그 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이미화, '2,000kcal-0kcal', 2021, 오브제 설치, '냉장고 환상' 전시 설치 전경.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이미화, '2,000kcal-0kcal', 2021, 오브제 설치, '냉장고 환상' 전시 설치 전경.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먼저 장수 욕망을 시각화한 ‘냉장고 타입 A’이다. 불로장생, 안티 에이징과 같은 100세 시대 무병장수를 향한 욕망이 담겨 있는 냉장고이다. A 냉장고의 주인인 노부부는 일과를 장수비법 검색으로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하루 만보 걷기는 필수이며, 다음 달 주름과 미백 시술을 예약해 대기 중이다. A 냉장고 안에는 각종 영양제와 약재료, 홍삼팩, 인삼과 같은 약재로 만든 담금주와 꿀단지가 보인다. 야채칸에는 오렌지, 참외, 호박, 파프리카, 아보카도 등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담겨 있다.

김철중 의학전문 기자가 말했듯이, 의사 눈에는 그 집 냉장고를 보면 암이 보인다고 했던가. 냉장고 안이 고기·버터·베이컨 등 고지방 음식으로 채워져 있다면 ‘대장암, 심장병 냉장고’로 의심되고, 젓갈·장아찌·절인 생선이 가득하면 ‘위암, 고혈압 냉장고’, 청량음료·초콜릿·아이스크림 등이 눈에 먼저 들어오면 ‘소아비만 냉장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 요구르트, 두부·콩 음식으로 꽉 차 있으면 ‘항암 냉장고’, 달걀·우유·살코기 등 철분과 칼슘이 많은 음식이 그득하면 ‘성장클리닉 냉장고’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도 A 냉장고는 ‘불로장생의 냉장고’로 보일까.

냉장고 타입 A.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냉장고 타입 A.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다음은 노인 노동에 관한 사례를 다룬 ‘냉장고 타입 B’이다. B 냉장고의 주인은 80대 남성으로 전철 택배 10년 차 노동자이다. 그는 하루 평균 3건의 택배 배송을 한다. 통합 4만 보를 걷고, 하루에 3만4000원, 월평균 약 70만 원의 소득을 얻는다. 냉장고 첫 칸에는 눕혀진 소주병이 보인다. 미니 냉장고라 병을 세워둘 공간도 없다. 점심으로 먹다 남은 빵도 있다. 이동 중에는 많이 먹을 수가 없어 점심은 주로 빵이나 떡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참고로 그는 무역업에 종사했고, 노후 일자리에서 전공을 살릴 만한 기회는 없었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5년은 더 택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장에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가 그의 노동을 상징하는 택배 봉투 위에 인쇄되어 있다.

냉장고 타입 B.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냉장고 타입 B. [사진 이모저모도모소 제공]

마지막으로, 무연 사회의 ‘냉장고 타입 C’이야기다. C 냉장고의 주인은 무자녀 1인 가구이다. 지난해 구청에서 안심 단말기 센서를 무상으로 받았다. 돌봄 서비스로 냉장고 문열림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만약 일정 시간 이상 어르신의 움직임이 없거나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즉시 지자체에서 해당 가정에 연락을 취하거나 직접 방문하고, 또 119에 신고할 수 있게 되었다.

C 냉장고를 보면서 나는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했다. 만약 냉장고 주인의 조상이 그의 꿈에 나타나면 무슨 말을 할까. “뭐라고, 무슨 센서라고? 참 신기한 세상이군. 별나다, 별나. 정부라는 게 그렇게까지 너를 돌봐 주는구나. 경찰이랑 군대라는 것도 있다지? 정의를 판단해 주는 법원도 있고, 너는 교육도 해주는 학교도 다녔다면서… 인터넷이라는 별난 것도 있어서 세상 소식을 다 접한다니 넌 얼마나 똑똑할까. 무슨 걱정이 있겠니. 편안하게 눈을 감겠구나. 그 뭐야, 호스피스? 그런 것도 있다지?” 조상을 만난 냉장고 주인은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친다. “네, 조상님. 잘 아시네요! 정말 편리한 세상이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에요.” 조상님도 함께 웃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가만있어 보자. 그런데 넌 왜 혼자가 된 거냐? 어쩌다가 가족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 거야. 가족들은 모두 어디 갔고? 우리에게 가족은 전부였단다. 네가 있는 세상에서는 가족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구나. 라떼는 말이야, 노인은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았단다. 모두가 노인이 현명하다고 했지. 너는 무슨 공부를 한 게냐. 우리가 더 지혜로웠어. 쯧쯧…”

이미화 작가는 일상 사물인 냉장고를 통해 소득 절벽의 위기, 장수 리스크, 노년 노동의 한계, 사회적 죽음으로 인한 고독 등 늘어난 노년의 시간을 마냥 장수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작품에 담았다. 그리고 현실의 벽 앞에 놓인 노년 세대의 단상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물었다. 이 사회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 가지의 냉장고 유형 외에도 그녀는 ‘기억차림(내 영혼의 부엌)’이라는 작품을 보여준다. 온장고 안에 아카이브 책자가 놓여 있는데,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사연 있는 한 끼의 식사’라는 기억차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르신 세대와 2,30대 청년세대가 만나 음식을 매개로 세대 간 정서적 공감을 교류하는 프로젝트였다. 냉장고에서 마지막 온장고까지, 마치 작가는 냉장고의 적정온도는 2℃가 아닌 36.2℃의 정서를 저장하는 온도가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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