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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진흙이 냉매…인도의 ‘마음씨 착한 냉장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28)

인도에서는 1958년에 처음으로 냉장고가 만들어졌다. 우리(1965년 금성눈표냉장고)보다 7년 정도 앞선 일이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0년 정도 지나, 고드레지(Godrej) 그룹은 인도산 제1호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 그룹은 1897년에 설립된 인도의 대표적인 대기업이다. 당시 냉장고의 크기는 약 200L 정도였으며 외관은 흰색 에나멜 처리를 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사로부터 냉장고 제작 기술을 지원받았지만, 1962년부터는 내부 부품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기업인 고드레지 그룹이 2010년 서민을 위한 냉장고를 개발한 사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는 현재 전체 가구의 2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냉장고 보급률이 낮다. 고드레지 그룹은 도시의 빈민층과 시골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냉장고 값 69달러를 1 개월에 1달러씩 갚아 나가는 할부판매 방식으로  출시했다.

초투쿨(Chotukool)이란 이름의 이 냉장고는 출시 첫해에만 10만 개 이상을 판매했다. 힌디어로 ‘초투(chotu)’는 작다는 뜻이다. 이 냉장고는 냉매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열전기 칩이 내장되어 있어 작은 배터리로 팬을 가동하면서 선선한 온도를 유지한다. 냉장고 내부는 10℃ 정도를 유지하며, 일반 냉장고 절반 수준의 전력량만 사용한다. 불안정한 전력 공급으로 정전이 잦은 지방에서 사용하기에 최적화됐다. 더욱이 7.8kg 정도의 가벼운 무게로 만들어져, 이동이 많고 전기료를 감당하기 힘든 빈민 맞춤형이었다.

인도 기업이 개발한 서민을 위한 맞춤형 냉장고 초투쿨. [사진 flickr]

인도 기업이 개발한 서민을 위한 맞춤형 냉장고 초투쿨. [사진 flickr]

전통 지식과 적정 기술을 활용한 냉장고 제품도 있다. 이 냉장고는 전기나 인공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2005년 도예가이자 사업가인 만수크 프라자파티가 테라코타 저장고를 만들었다. ‘미티 쿨(mitti Cool)’이라는 이름의 제품으로, ‘미티(mitti)’는 힌디어로 토양이란 뜻이다.

2001년 인도 구자라트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급수 시설과 전기 공급이 끊겼고 음식물 보관과 공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지역 주민들이 재해 복구에 큰 고통을 겪자, 그는 진흙을 활용해 전력이 없어도 음식물을 상당 기간 보관하는 방법을 찾았다. 선조들이 음식물을 질그릇에 보관하던 전통 지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 미티쿨. [사진 flickr]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 미티쿨. [사진 flickr]

이 냉장고 상부에는 물을 넣을 수 있는 탱크가 있다. 이 공간에 물을 부으면 위에서부터 토기 내부로 물이 스며든다. 진흙이 머금은 수분이 증발하면서 주변 열에너지를 뺏고 온도를 낮추는 기화열 반응의 원리가 작용한다. 냉장고 크기는 50L 정도이며, 초기 냉장고의 가격은 약 50달러였다. 수백 달러에 달하는 전기냉장고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미티쿨 냉장고 경우 8℃까지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어 각종 채소나 식재료의 보관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또한, 물을 보관하는 상단 부분에 수도꼭지를 달아 시원한 물을 식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 마치 미얀마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항아리 예오(yay oh)와 유사하다. 공양의 의미로 길 가던 행인이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아침마다 마을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항아리에 길어다 놓는다. 남을 배려하는 미얀마식 전통이다.

시원한 생수를 보관하는 물항아리 미얀마의 예오. [사진 심효윤]

시원한 생수를 보관하는 물항아리 미얀마의 예오. [사진 심효윤]

위의 두 가지 냉장고 사례를 보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말을 떠올려 본다. “세상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에 충분하지만, 어느 누구의 탐욕을 채워주기에도 충분치 않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인도의 냉장고는 누군가의 탐욕을 채워주지는 못하는 작은 냉장고지만, 적정한 가격과 기능을 통해 많은 사람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는 마음씨 따뜻한 냉장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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