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 같은 리더 있어야 우리 사회에 향기가 난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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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삽화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삽화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체취를 ‘원취(原臭)’라고 한다. 원취는 사람마다 다르고 고유한 특성을 가졌기에 지문이나 유전자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사건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지문과 유전자는 그 증거를 지우거나 감출 수 있지만 냄새는 절대 감출 수 없다.  원래의 냄새를 다른 냄새로 덮어 버린다 해도 그대로 남는다. 이런 원취 수사에 체취견들이 투입되고 있다.

또 최근 들어 폭발물 감지나 폐암, 헬리코박터 감염 등의 질병 진단을 위한 ‘생체 모방 생체-전자코(biomimetic bio-electric nose)’가 발명돼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개가 되었든 전자 장비가 되었든, 냄새를 감각하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향은 우리 몸의 입력 장치인 후각을 통해 뇌에 전달된다. 키보드나 마우스가 없으면 컴퓨터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듯, 감각 기관이 없으면 우리 뇌는 자료를 저장할 수 없으며 필요시에 적합한 정보를 출력할 수도 없다. 이때 코에 자극된 감각 자료(sense data)는 신경세포를 통해 뇌에 전달되는데, 어떤 감각기관에서 입력되더라도 전기신호라는 동일한 형태로 변환된다. 예를 들어 코로 들어오는 향, 눈으로 들어오는 색, 귀로 들리는 음파 등은 모두 다 전기 신호로 바뀐다. 그래서 색이나 향의 전기신호를 음파로도, 음이나 향의 전기신호를 색으로도 출력할 수 있다.

후각이 시각이나 청각보다 더 원초적인 이유는, 시각이나 청각이 덜 발달한 하등동물의 경우라도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때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는 것도 난자가 발생시킨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으로, 이는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가브리엘 로넷 교수와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의 연구팀에 의해 1998년에 밝혀졌다.

후각이 시각·청각보다 더 원초적

후각에 감각된 화학물질 정보가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에 전달되는 구체적 과정은 2012년 미국 듀크대 레프코위츠(Lefkowitz)와 스탠포드대 코빌카(Kobilka)교수가 ‘G단백질 결합 수용체(G protein coupled receptor, GPCR)’에 관한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알려졌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공중에 떠돌던 향 분자가 콧속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후각수용체’에 달라붙으면서 시작된다. ‘후각수용체’는 일종의 단백질로, ‘G단백질 결합수용체’ 즉 GDP(구아노신 이인산)라는 작은 분자와 알파, 베타, 감마로 결합된 소단위 형태의 G단백질을 말한다. 향 분자가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G단백질 결합수용체에서 GDP가 떨어져 나가고 GTP(구아노신 삼인산)와 결합한다. 이후 GTP와 결합된 소단위체는 세포막 안을 움직여 그 안에 있던 아데닐산 시클레이즈(아데닐산고리화효소)를 활성화시킨다. 아데닐산 시클레이즈는 ATP(아데노신 삼인산)을 cAMP(환상아데노신 일인산)으로 변환한다.

이렇게 생성된 cAMP는 세포 내에서 양이온 채널을 열어 세포 밖에서 주로 칼슘이온을 세포 안으로 흘려 넣는다. 그러면 세포 내 양이온 농도는 평소 상태보다 훨씬 높아지고, 세포 안은 플러스(+)전하를 띈다. 세포 내에 있던 염소이온이 세포 밖으로 분비되고 세포막의 전위가 높아져 최고조에 달하면, 이것이 전기신호가 된다. 이 전기신호가 신경을 타고 냄새를 느꼈다는 정보를 뇌에 보낸다. 결국 후각수용체에 결합된 향 분자가 전기신호로 바뀌어 향 정보를 뇌에 전달하게 된다.

전기신호로 바뀐 향의 정보는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로 보내진다. 향과 그것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 변연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향을 맡으면 단순히 그 향을 알아차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향에 얽힌 추억과 그때의 감정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묘한 행복감을 느낀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빵 굽는 냄새나 커피 향을 맡을 때 그렇다. 과거 특정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특별한 향과 함께한 행복한 순간이었다면, 우리의 뇌에 그 향에 대한 전기신호와 함께 행복감도 저장된다. 과거 맡았던 향을 현재의 특별한 곳에서 맡았을 때, 뇌는 그 향과 얽힌 과거 추억을 끌어낸다. 이른바 ‘프루스트 현상’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사진 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저서)

마르셀 프루스트(사진 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저서)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원 사진)가 쓴 대작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작은 사진)는 향을 기억과 연관시킨 작품으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에 근거해 어느 특정 향에 그것과 관련된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한다.

이 모티프는 프루스트의 소설뿐 아니라 그의 유일한 시집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향이 방아쇠 역할을 해서 닫혀 있던 기억의 창고를 열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어떤 특정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면, 그 이유는 향이 대뇌피질을 거치지 않고 향과 기억으로 강화된 신경세포군들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신경세포군들이 변연계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특이하게도 고대 히브리어는 기억이란 말을 ‘제케르’라고 했는데 이 말은 ‘향기’를 뜻하기도(『호세아』 14장 6절) 했다.

향의 추억 떠오르는 ‘프루스트 현상’

향 분자는 기체로 후각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에 각 성분의 휘발성에 따라 지속 시간에 차이가 발생한다. 보통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의 3계층으로 분류된다. 탑노트는 향이 발산된 뒤 제일 먼저 풍기면서 최초 10분간 유지되는 향이다. 이 향의 분자는 분자량이 작고 끓는점도 섭씨 160~220도로 가장 낮기 때문에 향이 제일 먼저 사라진다.

미들노트는 향이 뿌려지고 세 시간 정도까지 보존되는데, 250도의 끓는점을 갖는다. 베이스노트는 열두 시간까지 남는 잔향으로 끓는점이 280~320도에 이르고 휘발성이 가장 낮으며 향의 최종적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이 3계층은 정확하게 시간차를 두고 발산되기보다 서로 혼합되며 나는 향의 개성을 만든다.

향의 자극에는 촉매제가 필요하다. 딸기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딸기 고유의 향이 더욱 살아나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딸기향의 자극을 위해 레몬즙이 촉매제가 된 것이다. 이 레몬향에 있는 성분이 알데히드인데, 레몬 껍질을 벗겼을 때 활짝 터져 나오는 처음의 자극적인 향에 섞여 있다.

알데히드는 시나몬, 오렌지향에도 있는데, 이 성분이 함께 섞이며 다른 향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를 ‘알데히드 증강효과’라 한다. 향수에 포함된 알데히드는 톡 쏘는 듯한 신선함과 약간의 전율이 마지막까지 전달되도록 후각을 자극하는 촉매제다. 화학적으로 얻은 이 새로운 촉매제가 당시 노루의 사향이나 고래의 용연향이 해온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향수 산업은 급물살을 띠게 되었다.

서두에서 밝혔듯 체취는 사람마다 고유할 뿐만 아니라 사라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원취, 자신만의 향을 갖고 있다.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 자신만의 체취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겠지만, 섞이는 방식에 따라 또 다른 향들을 만들어 낸다.

코를 찌르는 된장 냄새도 국에 들어가면 입맛을 돋우겠지만, 아무리 좋은 화장품 향도 밥그릇에서 난다면 비위가 상할 것이다. 그 자체로는 악취인 사향과 용연향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향수의 촉매제로 사용됐듯, 악취로 느껴지는 냄새도 적절한 곳에서만 난다면 매력적인 향이 될 수 있다.

각자 가진 향들이 한꺼번에 발산되어 기화한다면 잠시 후 그 향은 다 사라지고 근사한 향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러 향이 모여 특정 향수를 만들 때 그 향에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 앞서가고, 누군가는 중간에 있으며, 누군가는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주기에 우리 사회가 나쁘지 않은 향기를 발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떤 향을 내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향이 느껴지는가. ‘원취 불변의 법칙’을 살려두되 각자의 향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조향사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그런 조향사 같은 리더들이 있을 때 우리 각자의 향은 끝까지 아름다운 역할을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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