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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좌절 말고 ‘자절’해야 재생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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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호 30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위험이 닥치면 꼬리를 스스로 잘라내는 볏도마뱀붙이(크레스티드게코). [사진 김동훈]

위험이 닥치면 꼬리를 스스로 잘라내는 볏도마뱀붙이(크레스티드게코). [사진 김동훈]

‘마블 히어로’의 초능력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힐링팩터’, 즉 재생 능력이라 하겠다. 헐크·토르·원더우먼·헬라·슈퍼맨 등에게도 치유되는 능력이 있지만,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다시 재생하는 울버린이나 데드풀이 가진 재생 능력이 단연코 절실하다. 울버린은 살갗 밑에 감춰져 있는 그의 칼날이 손등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피부에 상처를 입지만 ‘힐링팩터’ 덕분에 즉시 재생된다. 또 다른 마블 영웅 데드풀은 암으로 죽을 운명에서 살아난 후에 총을 맞아도 죽지 않고, 심지어 머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난다.

우리 피부는 상처를 입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그렇지만 상처가 아주 크거나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경우에는 원래의 상태로 재생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어떤 이유로 사지 절단의 아픔을 겪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마블 히어로들과 같은 재생 능력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증하고 있는 당뇨병의 경우 말기에 이르면 환자의 15~25%가량이 발이 썩어들어 가는 궤양에 이르게 되고 그 가운데 20%는 절단의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이 경우 재생이 가능하다면 그 기술은 인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동물들의 자절(自切)과 재생 원리를 의학에 응용하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재생된 꼬리 또 ‘자절’하는 도마뱀도

도마뱀의 잘린 꼬리. [사진 김동훈]

도마뱀의 잘린 꼬리. [사진 김동훈]

재생 능력을 연구해 봄직한 생물들이 있다. 울버린이나 데드풀처럼 몸의 일부가 절단되더라도 절단 부분을 재생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생물들. 심지어 이들은 재생 능력을 믿고 직접 자기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어 천적으로부터 위기를 모면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자절’은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다. ‘자절’의 영어 ‘오토토미(autotomy)’의 뿌리어는 그리스어인데, ‘스스로(auto-)’ ‘절단하기(tomy)’를 뜻한다. 스스로 끊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동물에게 마취를 하면 사람이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자절’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많은 동물에게서 일어나는데, 거미류, 곤충류, 극피동물류, 갑각류, 민달팽이류,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와 같은 종에서 볼 수 있다.

자절의 대표적인 예는, 포식자를 만날 경우 꼬리를 끊고 달아나는 일부 도마뱀에게서 볼 수 있다. 몸에서 떨어졌지만 아직 파닥파닥 꿈틀거리고 있는 도마뱀의 꼬리에 포식자가 잠시 주위를 빼앗긴 틈을 타 도마뱀은 어디론가 유유히 도망치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몸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자절하는 것을 ‘방호자절’이라 한다. ‘방호자절’은 천적뿐만 아니라 같은 종 간의 다툼으로 서로의 꼬리를 물게 되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도마뱀의 경우 새끼들이 먹잇감을 놓고 싸우거나 암·수컷이 교미를 위해서 서로를 공격하다가 꼬리를 잘라낼 수도 있다.

도마뱀의 자절은 척수반사에 의한다. 또한 자절을 하는 또 다른 종인 녹색게는 다리를 자르고 달아나는데, 만약 목재 핀셋으로 위협하면 그 다리를 끊지 않지만 천적인 낙지의 다리를 핀셋에 감아 위협하면 비로소 자절을 한다. 반면 게의 흉부신경절에 위치한 반사중추가 자극되면 모든 다리를 자절한다. 이것으로 자절은 일종의 반사작용으로서 중추신경계에서 내리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자절은 특정 부위, 그러니까 도마뱀의 경우는 꼬리, 게의 경우는 다리에서 일어난다. 꼬리나 다리의 각 마디에 있는 탈리절(脫離節)의 근육은 특별하게 수축되어 스스로 잘려나가기가 쉽다. 절단되는 즉시 격막장치가 출혈을 막고 혈관이 급격하게 수축하기 때문에 피는 거의 나지 않는다. 마디마디가 나뉜 채 결합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분리된다.

탈리절은 자절이 일어난 이후에 재생을 신속히 서두른다. 자절이 일어난 부위에는 어떤 조직으로든 발달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있어서 잘려나간 부분이 재생될 수 있다. 재생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꼬리나 다리가 끊어지면 거기에 저장된 영양분, 특히 지방의 상당량을 잃어버려서 다른 신체 부위에 남아 있는 영양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몸 전체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도마뱀의 경우 새로 나온 꼬리는 원래의 꼬리만큼 완전한 고리 모양을 갖지는 못한다. 이제는 더 이상 척추뼈에 의해 지지받지 않는 대신 둥글납작한 연골로 된 막대구조로 바뀌게 된다. 보통은 원래의 꼬리보다 질감이 매끄럽고 굵기가 더욱 가늘어지면서 길이는 짧고 머리와 일대일 비율이 된다.

꼬리가 일단 지방을 적당히 저장한 상태가 되면 완전히 재생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원래의 꼬리가 절단되고 그보다 못한 꼬리가 생겼다고 해도 전반적으로 볼 때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한 번만 자절하는 도마뱀이 있는가 하면, 레오파드게코와 같이 새로 자란 꼬리가 재차 위협을 받게 되면 재생된 꼬리 전체를 또 자절하는 경우도 있다.

천적을 피하기 위한 이와 같은 ‘방호자절’ 외에도 다른 이유로 자절하기도 한다. 촌충류의 몸을 이루는 규칙적인 몸의 마디인 편절(片節)이나 연체동물 중에서 가장 진화된 것으로 알려진 두족류의 다리 일부가 변형된 교접완(交接腕)은 생식을 위해서 절단이 이루어지며, 플라나리아·남작벌레와 같은 와충류나 지렁이 같은 빈모류 등도 개체의 증식을 위해 체세포분열을 하는데 이런 경우 ‘생식자절’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자절의 진정한 목적은 성장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며 증식하기 위한 절단과 재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볏도마뱀붙이(크레스티드게코)는 나무에서 위로 올라가는 야생 습성이 있다. 하지만 좁은 사육장 안에 살게 되면서 뜻하지 않는 증상이 생기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플로피 테일 증후군(FTS, Floppy Tail Syndrome)’, 즉 ‘늘어진 꼬리 증후군’이다. 도마뱀은 습성에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가지만, 사육장의 막힌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고 꼬리는 중력에 의해 아래로 꺾이게 된다. 어린 도마뱀의 꼬리 근육은 약해서 처음에는 그저 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꺾인 채 굳어져서 심각한 상태가 된다.

인간 세포, 자멸 통해 이상세포 없애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한 장면.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한 장면.

‘플로피 테일 증후군’을 가진 도마뱀의 꼬리는 골반 부위를 무겁게 짓누르게 된다. 골반은 제멋대로 틀어지면서 암컷이 알을 낳을 때 산도에 알이 걸려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알막힘증(Egg Binding)’을 일으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된 자세가 일상이 되면 수컷에게도 척추뼈가 괴사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여 끊어내고 재생시킬 꼬리가 잘못된 습관으로 굳어버리면, 그대로 좌절한 채 불편하게 살든지 죽을 각오를 하고 꼬리를 잘라내든지 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기존의 잘못된 습관에 고착화되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기형 꼬리로 고착되기 전, 그러니까 아직 그 근육이 연약할 때 자절해야 한다. 그때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절단에 따른 고통 때문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는 엄청난 힐링팩터로 인해 스파이더맨이 애를 먹는 절대강자 빌런 리저드가 등장한다. 꼬리가 잘려도 신속하게 재생하는 도마뱀의 습성을 이용한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이 에피소드에 따르면 원래부터 한쪽 팔이 없는 과학자 코너스는 팔을 재생시키기 위해서 도마뱀 유전자를 이용한다. 실험 자체는 성공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거대한 도마뱀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런 재생 능력을 인간이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고통이 따른다는 하나의 교훈일 것이다.

자절에는 혼자 직면해야 할 고통이 따른다. 꼬리가 재생될 때까지 균형을 잡거나 방향 전환을 원활하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꼬리를 잃은 상실감 때문에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어야 한다. 더구나 천적에게 잡힐 확률도 높아지면서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된다.

마취를 한 도마뱀의 탈리절에서는 자절이 일어나지 않듯, 우리도 자절을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제 살을 잘라내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플로피 테일 증후군’처럼 무심코 되풀이했던 좋지 않은 생활태도나 관계와 습관들, 그리고 부정부패를 끊을 때도 고통은 따르지만, 그래도 직접 잘라내야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자연은 늘 자절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지는 것, 겨울이 되어 만물의 성장이 멈추는 것도 자절의 한 종류로 칠 수 있다. 결국은 토양과 자연을 윤택케 하여 재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몸도 매순간 자절하고 재생하고 있다. 머리카락이나 피부 각질, 생리혈 등을 우리는 계속해서 버리고 재생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생물학자 론 센더와 론 마일로에 따르면, 매일매일 꼬박 3300억 개의 세포가 죽고 태어나면서 그 중 일부가 이상세포를 없애고 정상세포를 새롭게 나게 하는 ‘세포자멸(apoptosis)’도 자절의 예로 볼 수 있다. 신체가 절단되더라도 여기 마블 히어로와 같은 재생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도 코로나19만이라도 치유할 수 있을 조그만 ‘힐링팩터’만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해 동안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좌절’할 것이 아니라 ‘자절’할 것을 생각하자. 또 한 해를 맞이하기 전에 스스로 잘라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형으로 고착된 치명적인 장애물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자. 거기서부터 회복과 재생이 시작될 것이다. 자, 이제부터 좌절이 아닌 자절을 생각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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