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떼’ 5060남성들 ‘환지통’ 겪는 뇌를 성형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30 00:02

업데이트 2021.10.30 00:37

지면보기

760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과학 탐미

과학 탐미

위를 절제한 환자가 속쓰림을 느낀다면? 아픔을 느끼는 신체 기관이 있어야 통증이 있기 마련인데, 있지도 않은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를 ‘환지통(幻肢痛·phantom limb pain)’이라 한다. 환지통에서 영어 ‘phantom limb’은 ‘가상 수족’이다. 감각기관이 없으면 통증도 없어야 하는데 그 부위가 아프거나 가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절단된 부위에서 통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특정 신체 부위의 자극이 없이도 통증을 느끼는 것은 뇌에 남아 있는 통증의 기억 때문이다. 정의가 많아 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지만, 기억은 감각자극에 의해 뇌에 있는 신경세포가 특정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다. 신경세포의 연결이 바뀌면 뇌가 영향을 받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감각자료는 특정 신체 부위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은 감각수용기를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정보로 부호화된다. 이 감각정보는 신경세포에 의해 뇌에 신호로 보내지고 이윽고 기억으로 저장된다. 결국 기억이란 뉴런들과 시냅스에 나타나는 신경 신호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오른팔 자극해 없어진 왼팔 통증 해소

감각기관 없이 단지 통증의 기억 때문에 유발되는 고통이 ‘환지통’이다. 이는 뇌의 신경신호에 의한 것일 뿐 신체가 겪는 통증은 아니다. 하지만 감각기관이 없다고 해서 감각자료, 감각자극, 감각정보마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감각기관 이외의 다른 것으로 그 과정이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뇌도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처럼 ‘성형(?)’이 된다. 뇌가 변화된다는 의미의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은 뉴런들, 즉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바뀌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뇌 가소성’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도 한다. 뇌 과학자들은 우리 자신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일평생 계속 ‘뇌 가소성’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뇌 가소성 또는 신경가소성의 핵심은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바뀐다는 데 있다. 신경세포들은 세포체·가지(수상)돌기·축삭돌기로 되어 있고, 축삭돌기와 가지돌기 사이의 시냅스를 두고 서로 접속해 있다. 이때 시냅스에 신경신호가 형성되어 가지돌기 쪽에서 세포체를 거쳐 축삭돌기로 보내진다. 신호전달에 따라 신경세포들의 관계가 강화되거나 약화되어 흥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흥분되면 신경전달물질이 감각수용기에 결합되면서 그 흥분까지도 전달된다.

그렇다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신경신호는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감각자극 때문이다. 자극이 있으면 뉴런들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의 통로가 열리고 바로 그때 순간적으로 전위차가 발생한다. 전위차는 신체의 외부 및 내부 환경으로부터 감각된 변화가 신경세포들에 의해 감지될 때 생기면서 신경신호가 된다. 바로 이 신경신호가 신경세포에 연결되어 뇌의 구조를 바꾼 것이다.

뇌 가소성은 기억뿐 아니라 행동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신경세포가 온몸에 두루 퍼져있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에까지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떤 감각자료가 자극을 통해 들어올 때 뇌의 구조와 기능이 바뀔 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뇌 가소성의 영향 중 한 예가 중독증이다. 원칙적으로 신경신호가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전달될 때 신경전달물질이 감각수용기에 달라붙는다. 그런데 신체에서 만들어지는 세라토닌을 대신해 만일 다른 유사 화학물질이 감각수용기에 결합된다면, 중독 현상이 된다. 이때 동반되는 과잉 흥분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시키고,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쾌감이 아닌 의존적인 쾌감을 정도 이상으로 지속하려 한다. 특히 불쾌한 감정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장기간 계속될 경우 중독에 빠져서라도 과잉 흥분 상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약물에 의존하거나 각종 중독에 빠지게 되는데, 이 또한 뇌 가소성과 관련된 예다.

중독 현상에서 보이는 흥분 상태는 특정 기억에 고착된 경우에도 나타난다. 신호전달이 다른 신경세포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신경세포들의 관계가 강화된다. 이때 강화 관계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아예 하나의 신경세포군을 형성하게 되는데, 바로 그 강화된 신경세포군에서 고정된 형태의 특정 기억이 지속된다. 만일 어떤 특정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면, 그 이유는 강화된 신경세포군들이 당신의 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경세포군들은 해마(hippocampus)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환지통 이야기로 돌아가자. 환지통은 이미 상실된 신체 부위에서 느끼는 통증, 그러니까 이전의 기억 때문에 발생한다. 감각자극, 감각자료, 감각정보 등이 배제된 채 이미 강화된 신경세포군에서 지속되는 통증 기억 때문에 생긴다. 그렇다면 극심한 환지통의 아픔을 없애기 위해 이미 고착된 신경세포군을 흔들어 놓으면 어떨까?

단절된 과거 능력 다시 이을 분야 모색해야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오른쪽)가 환지통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한 거울박스.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오른쪽)가 환지통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한 거울박스.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70)이었다. 그는 왼팔을 잃은 환지통 환자에게 큰 상자를 만들어 주었다. 그 상자에 환자 자신의 정상적인 오른팔을 넣고 상자의 왼쪽 전체 면에 설치된 거울에 비치게 한다. 환자는 거울에 비친 팔을 보며 자신의 왼팔이라고 생각한다. 환자가 오른팔을 주무르거나 긁으면 거울에 보이는 가상의 왼팔이 자극받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왼팔에서 느껴졌던 통증이 사라졌다. 그는 이것을 ‘거울시상효과’라 했다. 환지통은 신체 부위에서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 있는 강화된 신경세포군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라마찬드란은 각 신체 부위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뇌의 특정 부위가 서로 대응하여 상호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절단되고 없는 손가락 부위가 가려운 사람이 자신의 뺨을 긁으면 가려움이 사라진다고 했다. 손가락에 해당하는 신경세포의 뇌의 부위와 뺨에 해당하는 부위가 가까이 있는데, 손가락을 잃으면 그 감각에 상응하는 신경세포들이 뺨에 상응하는 신경세포와 새롭게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밝혀낸 것이다.

라마찬드란의 사례는 뇌나 신경이 특정 역할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된다는 성질, 즉 뇌 가소성 또는 신경가소성에 근거해 통증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환지통 이외에도 과거 기억과 관련해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경력이 제아무리 화려했어도 은퇴 후 너무 큰 아쉬움이 남을 때라든가, 지난 연애가 눈부시게 황홀했어도 사랑을 잃어 서러움이 복받친다면, 거기에도 쓰라린 아픔이 있다. 두 경우 모두 강화된 신경세포군 때문에 특정 기억에 고착된 예이다.

또 있다. 2019년 말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33.9%에 달한다. 서울에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 가구 중 3분의 1이 넘는데, 고시촌을 비롯해 누락된 일부 사각지역까지 고려하면 그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다. 그중 고독사 고위험군이 50~60대 남성이다.

‘5060남성들’이 1인 가구로 떠밀리는 이유 중 하나는 조기 퇴직 때문이다. 이른바 ‘경력단절’은 경제적 궁핍뿐만 아니라 ‘관계단절’까지 몰고 왔다. 이들 세대의 독특한 언어 습관을 꼬집는 씁쓸한 신조어가 일명 ‘꼰대라떼’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나 때는 말이야” 표현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어두운 골방에서 ‘은둔형외톨이’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라떼…”라고 침 튀기며 핏대를 올리면서도 바로 그 과거로부터 단절되어 좌절하고 고통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환지통이 있지도 않은 신체 부위에 매여 있듯, ‘5060남성들’은 단절된 과거 경력에 매여 있다.

이 통증을 완화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있다. 뇌 가소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거울시상효과’처럼 상자 하나 준비해 한 면에 ‘거울’을 달면 된다. 단 거울에 비추기 위한 건재한 한쪽 팔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손가락에 해당하는 신경세포가 이제 절단된 손가락이 아닌 뺨의 영향을 받듯, 남은 부위를 활용해 특정 자극을 주자. 과거의 능력은 또 다른 부위에 새롭게 연결됐기 때문에 경력단절로 죽은 것 같던 신경세포 뉴런들이 꿈틀거릴 것이다.

당신은 어떤 ‘라떼’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없는 과거, 단절된 경력 때문에 통증을 느낀다면, 뇌를 성형할 때다. 예리한 수술용 메스를 상처 부위에 갖다 대듯 예리한 현실의 눈길로 건재한 부위를 응시하자. 과거 능력이 절단되었을지라도 어떤 부위에라도 다시 접해 이을 수 있다. 수족절단 통증에 다른 수족을 활용하듯, 경력단절 고통에 남은 실력을 발휘해보자. 잘나갔던 왕년의 모습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단지 다른 잠재력에 연결되어 있을 뿐. 자 이제, 당신의 뇌를 성형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