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했다가 패소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첫 재판이 일본 측이 답변하지 않아 연기됐다. 일본 측의 답변 지연으로 지난 1심과 마찬가지로 향후 재판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25일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 구회근)는 이날 예정된 고(故) 곽예남·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낸 일본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1차 변론을 취소하고 기일을 내년 1월 27일로 변경했다. 일본 측의 소장 송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답변이 와야 공시송달이라도 진행할 수 있는데 (일본 측에서) 답변을 하지 않고 있어 송달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다음 기일까지 송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법원에서 민사소송을 시작하려면 일본 법원에 소장이 먼저 전달돼야 한다.
日측 묵묵부답에 ‘1심 재판 데자뷔’
소송 서류는 국제민사사법공조 등에 관한 예규 제4조에 따라 ‘한국 법원→법원장→법원행정처→한국 외교부→주일 한국대사관→일본 외교부→일본 법원’의 경로를 거쳐 일본에 전달된다. 일본이 소송 서류 접수를 거부할 경우 한국 법원은 공시송달을 결정할 수 있다. 공시송달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할 때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해 해당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당초 재판부는 이날 1차 변론을 열고 내년 1월 27일, 3월 24일에 변론을 더 진행한 뒤 선고기일을 같은해 5월 26일로 지정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소송 서류가 오가는데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일을 미리 정해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측이 재판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약 3년 만에 첫 변론이 열린 1심 재판과 같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원고 측 변호인은 “1심 때도 첫 번째 송달 절차에만 1년 정도가 소요됐는데 괜찮다면 다음 기일을 취소하고 (소송 서류가) 송달된 이후에 기일을 다시 잡아줄 수 없느냐”고 제안했지만, 재판부는 “기일을 추정하면 그 내용을 또 송달해야 하니 (그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자”고 답했다.
원고 측 “계속 문제 제기할 것”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재판을 마친 뒤 “1심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주권침해를 이유로 송달절차에 협조하지 않겠다’ 등의 답변을 받아야 공시송달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일본도 내각이 바뀌어 현 상황을 지켜보지 않을까 싶다”며 “하지만 이 재판은 별개 상황인 만큼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사건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민성철)는 지난 4월 ‘국가면제(특정 국가를 다른 나라의 법정에서 판단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를 들어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법원 판례는 물론 입법부·행정부가 취해온 태도에 부합하지 않고 국제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