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원 "위안부 합의는 ‘유효’", 2019년 헌재 판단과도 정반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원고 패소로 결론 난 2차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평가도 상세하게 담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민성철)는 이날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1억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국제관습법의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는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위안부 2차 손배소 패소 판결 파장

민사15부는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섭을 진행해 2015년 합의에 이른 것이고 해당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가 계속되는 한 소송이 아닌 대체 권리구제 수단이 있다”고 밝혔다. “더이상 정부로부터 외교적 보호권 행사를 기대할 수 없어 소송만이 최후의 권리구제 수단”이라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또 “위안부 합의는 문언상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고 있고, 이로인해 일본 정부가 자금(10억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했다”며 “생존 피해자와 사망 피해자의 유족 등 99명이 지원금을 수령했다”고 거론했다. 그러면서 “설령 위안부 합의가 일본 정부의 책임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등 일부 문제가 있더라도, 외국과의 외교 협상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이 있어서 당연히 한국의 입장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모두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생존 피해자의 연령을 고려해 조속한 시일 내에 실질적인 조치를 마련하려 한 것으로 보이고, 이번 합의는 그 이전의 외교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뉴스1]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도 지난달 29일 1월 확정 판결에 대한 소송비용 한국 측 국고부담 결정문에서 2015년 합의를 들며 “국가 간 합의가 있는 만큼 ‘이전과 모순된 언행을 하면 안 된다’는 국제관습법상 금반언(estoppel)의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에 대해 강제집행을 해선 안 된다”고 설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법원 판단이 헌법재판소의 2019년 12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헌재는 당시 위안부 합의의 위헌확인 소송에서 “헌재가 판단할 성격이 아니다”며 각하 결정을 하며 “위안부 합의는 아무런 법적 효과가 없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법적 성격을 상세히 설명했다.

헌재는 “해당 합의는 한일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이 있는 문제이자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회 동의나 헌법상 조약 체결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합의에서 총리대신이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시하는 부분도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 책임이 적시되지 않았고 일본군 관여의 강제ㆍ불법성도 명시되지 않아 사죄 표시는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가 아니다”고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 일본상대 1·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주요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위안부 피해자 일본상대 1·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주요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1월 8일 원고 승소로 확정된 1차 위안부 피해소송에선 이 같은 헌재의 관점이 받아들여졌고, 2차 소송의 원고 대리인들도 헌재 판단을 손해배상 청구권 인용의 주요 근거로 변론했다.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만큼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만이 최후구제수단”이라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 심판정 내부.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심판정 내부. [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소송의 하급심들이 불과 석 달 간격으로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것과 별개로, 법원과 헌재의 해석도 충돌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만약 이번 2차 소송이 대법원까지 올라가 헌재와 해석을 달리한 판결이 확정될 경우, 소송 당사자들이 각자 유리한 해석의 우위를 주장하게 될 가능성 마저 있다.

실제 원고 대리인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21일 “헌재는 2015년 합의가 권리구제 절차가 될 수 없다고 명시를 했다”며 “오늘 판결은 그에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유정·박현주 기자 uuu@joo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