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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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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원〉

투석의 날들 
-장인회

콩꽃 팥꽃이 필 때쯤 괜스레 아팠다
명치 뒤 숨겨 놓은 콩 이랑 팥 이랑에
뭇 벌레 들락거린 흔적, 해독이 어렵다

일생동안 콩과 팥은 나란히 하나다
보이지 않아 놓친 불온했던 기미들
방심을 방치한 무게 그 끝을 알 수 없다

매몰된 혈관에 부푼 힘줄이 일어선다
실핏줄에서 잔금까지 걸러내고 행구는
순하게 리셋된 수액이 구겨진 몸을 세운다

◆장인회

장인회

장인회

경북 포항 출생, 1997년 쇳물백일장 시부문 장원, 2019년 신라문화제 시조부문 장원, 2021년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 선생 추모 백일장 시조부문 차상.

〈차상〉

뒤집기
-김경숙

높은 곳 바라보고
눈 맞춘 우리 아기

아니다 싶었는지
조막손 불끈 쥔다

포효한
저 천하장사
울고 웃는 한판승

〈차하〉

자선당 유구遺構 
-박영구

불 먹은 돌은 더 이상 돌이 아니네

나라를 앗긴 판에 궁궐 전각쯤이야. 합방 후 왜인에 뺏긴 경복궁 자선당은 도쿄 사설 박물관이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에 불타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 호텔 산책로에 불구가 되었구나. 애끓는 향수병을 앓다가, 앓다가 궁으로 돌아와도 자선당* 복구할 때 주춧돌로 쓰이지 못 해 새 집도 불구가 되었구나. 알겠네, 돌아온 돌들은 가슴에 불을 먹은 불덩이였음을, 알겠네 이제 알겠네.

무너진 왕조에 열병하듯 녹산*에 누운 환향석

* 자선당資善堂 : 경복궁 내 전각이며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했던 동궁
* 녹산鹿山 : 경복궁 건청궁 뒤뜰 동쪽 언덕,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의 시신을 일인들이 불태웠던 자리

〈이달의 심사평〉

중앙시조 백일장은 우리 시조의 주춧돌이며 대들보다. 응모자들은 열정보다 먼저 형식을 터득해야 한다. 비록 뛰어난 작품도 정형률을 모르거나 파괴한 것은 당연히 제외했다.

장원으로 선정된 장인회의 ‘투석의 날들’은 화자가 신장염을 앓으면서도 말의 너름새가 깊다. 콩과 팥의 의미가 다른 유희적 낱말의 연상에서 포착된 내포와 외연을 이체동심의 얼개로 엮어냈다. 세 수를 거슬러 읽어가면 일생동안 콩과 팥이 하나인 투병과 생명의 이랑이 공존하는 도드라진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메타적 아날로지가 충만하다.

차상으로 김경숙의 ‘뒤집기’를 선한다.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는 울음이 유일한 언어다. "조막손 불끈 쥔” 분노가 일수불퇴의 "한판승”으로 묘미를 잘 헤아린 보배로운 엄마의 눈이다.

차하로는 박영구의 ‘자선당 유구’를 올린다. 사설시조의 심장인 해학과 풍자 추임새를 비껴가고 있으나 "불 먹은 돌은 더 이상 돌이 아니네”라는 초장이 불을 삼키는 사관의 가슴처럼 뜨겁다. 다만 역사적 진실을 형상화하는 기교가 궁색하다.

남궁증 황남희 박찬희 제씨들의 작품을 아쉽게 놓치며 새로운 모티브를 탐하기보다 참신한 페르소나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최영효(대표집필)·강현덕 시조시인

〈초대시조〉 

딴죽  
-정옥선

어젯밤 숨죽여 울던 늦비를 품었는지
붉게 불탄 낙엽에 열적게 미끄러졌다

시절의 딴죽만 같아
시치미를 툭툭 턴다

석고붕대 시린 발목에 들러붙는 회한들
마음의 뒤편에 선 바람이 징징거린다

허공을 끌어안으며
오십을 보고 있다

◆정옥선

정옥선

정옥선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2019년 열린시학상 수상, 시조집 『딴죽』.

늦가을의 바람이 차다. 채울 것도 비울 것도 없는 11월은 바람이 비를 몰고 오는 날이 많다. 스산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것은 시절에 ‘딴죽’걸기다. 그런 날엔 길 위에 쌓인 낙엽도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젖은 낙엽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숨죽여 울던 늦비를 품’은 낙엽을 잘못 건드리면 미끄러지기 쉽다. 그것도 ‘붉게 불탄 낙엽’에 몰입하다가 미끄러졌으니 남몰래 자아내는 화자의 쓴웃음은 당연하다. 그 쓴웃음의 정체는 상극인 물과 불이 내부에서 맞붙을 때 나오는 ‘열적게’ 뱉는 독백이다. 자신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 몸의 유연성이나 순발력이 떨어졌음을 탓해야 옳다. 하지만 뭐라고 입안을 맴도는 말은 ‘시절’ 탓으로 돌리며 ‘시치미를 툭툭 터’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시간의 흐름과 몸의 변화는 비례하는 것인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사람의 일이니 몸을 다친 순간에 나오는 것은 슬픔과 유머를 동반한 한숨이자 쓴웃음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과 나이를 인식하는 화자의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넘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있는 사물에 딴죽을 걸며 툭툭 털고 일어설 때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길목에 서면 ‘시린 발목에 들러붙는 회한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숨죽여 울던 늦비’와 ‘붉게 불탄 낙엽’도 회한의 뜰 안에 놓인 것들이지만, 사람의 나이 ‘오십’을 생각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회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오십’은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고 했으나 실은 ‘마음의 뒤편에 선 바람이 징징거리’는 것을 느끼며 ‘허공을 끌어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반백의 나이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 뭐든 새로 시작해도 좋을 때이니 다시 몸을 다잡아 회한의 뜰을 재정비하는 것이 좋겠다.

김삼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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