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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경이 아니라 경찰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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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일 경기도 양평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당시 시민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2일 경기도 양평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당시 시민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경찰의 어이없는 대응으로 시민들이 잇따라 희생된 가운데 현장을 담당한 경찰관들의 심각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자 경찰관이 범행 장소를 이탈한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함께 출동한 남자 경찰 역시 현장을 벗어난 정황이 어제 추가로 밝혀졌다.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중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30대 여성의 경우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반복 신고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을 경찰이 스마트워치를 통해 듣고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미 범죄 우려가 예고된 상태에서 피해자가 경찰에 출동을 요청했는데도 범행을 막지 못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총체적 부실을 여경 탓으로 몰아가는 일각의 분위기 또한 심각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인천·양평의 흉기난동 사건을 소재로 “국민은 남성·여성 관계없이 위기 상황에서 국민 재산과 생명을 지킬 경찰공무원 임용을 기대하고 있다”며 ‘성비’를 언급했다. 인천 사건의 경우 경찰 내부에서조차 시보인 여경보다 선임인 남자 경찰관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양평 사건은 경찰관들이 흉기를 든 용의자와 대치 끝에 권총을 발사해 검거했다. 유튜버가 도망갔다고 비난한 여경은 공격조가 아닌 수비조로서 맡겨진 역할을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미 전체 경찰관의 10%를 넘어선 여경을 매도하는 건 근거 없고, 치안에 도움이 안 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여경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혐의 도구로 악용될까 우려스럽다”(서울지역 지구대장)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이런 현실에서 제1 야당 대표가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여경 혐오 논란을 촉발한 꼴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은 경찰 전반의 심각성을 알리는 징후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찰을 질타하고 김창룡 경찰청장이 TF를 꾸린다고 했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냉소가 나온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큰 문제가 터질 때마다 TF를 꾸린다면서 일선 경찰관을 더 빼간다”고 지적한다.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경찰 개혁을 주도했던 정부와 여당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질타했다. 한 경찰 간부는 “스마트워치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지는데도 무시했다”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우려를 새겨들어야 한다. 현장 대응이 강해지도록 인력을 재배치하고 무기 사용 매뉴얼도 수정해야 한다. 치안에 새로운 위협 요소로 떠오른 여경 혐오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