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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슐랭 토크] 광부들 목에 낀 탄가루 씻겨준 ‘족살찌개‘ 문경서 맛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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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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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는 한때 제2 탄전지대로서 광업이 성행했다. 당시 광부들이 일을 마치고 목에 낀 탄가루를 기름기 로 씻어내고자 먹었던 족살찌개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다. ‘족살’은 문경에서 키우는 약돌돼지의 앞다리살을 뜻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문경시는 한때 제2 탄전지대로서 광업이 성행했다. 당시 광부들이 일을 마치고 목에 낀 탄가루를 기름기 로 씻어내고자 먹었던 족살찌개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다. ‘족살’은 문경에서 키우는 약돌돼지의 앞다리살을 뜻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탄광 경기가 한창일 때는 경북 문경 점촌 거리에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길을 가던 행인 10명 중 7명이 뒤를 돌아봤다.

한국문화원연합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라져 가는 기억, 한국의 탄광’에 묘사된 탄광 경기가 한창일 때 경북 문경의 점촌거리에서 떠돌던 말이다.

문경은 남한에서 처음으로 탄광이 문을 연 곳이다. 1926년 ‘문경탄광’이 시초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일본 회사에 의해 개발된 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을 합쳐 문경탄광이라고 불렀다.

이후 문경은 강원 태백에 이어 국내 제2 탄전지대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당시 작은 규모의 광산까지 합치면 광산 운영을 하는 업자만 300명쯤 됐다고 한다.

탄광 운영 당시 광부들 모습. [사진 문경시]

탄광 운영 당시 광부들 모습. [사진 문경시]

1990년대 탄광이 문을 닫기 전까지 지역에 광부가 가장 많을 때는 7200명 정도였다. 마을마다 요정이 서너 개씩 있었고, 광부들의 월급날은 지역 사회가 들썩였다.

국내 석탄의 생산비가 비싸지는 가운데 주 사용 연료가 연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석탄광산은 더는 버티기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문경지역 경기도 얼어붙었다.

탄광에 국비를 보조하는 등 광업을 지원했던 정부는 85년부터 석탄산업 합리화사업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한계 광산의 정리에 나섰다. 그렇게 문경의 탄광도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탄광이 호황이었을 때 16만 명을 웃돌던 문경의 인구도 7만5000명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이제 문경에서 더는 탄광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때 그 시절 흔적은 남아있다. 광부들이 즐겨 먹던 ‘족살찌개’가 주인공이다. 광부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탄가루와 함께 목을 씻어내려주던 음식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문경에는 여전히 족살찌개를 만드는 음식점들이 남아있다. 문경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문경의 맛’이다.

정임순 사장

정임순 사장

‘족살’은 문경에서 키우는 약돌돼지의 앞다리살을 뜻한다. 문경에서는 예로부터 돼지 앞다리살에 붙은 살코기와 껍데기를 한 데 묶어 ‘족살’이라고 불렀다. 당시 광부들은 목에 낀 탄가루가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해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 고기와 어우러진 국물에 막걸리 한 잔도 곁들였다.

찌개에는 돼지고기, 무, 두부,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어슷하게 썬 파를 넣었다. 무와 돼지고기는 애벌로 끓여 두부와 버섯과 파, 후추를 뿌린다. 그렇게 칼칼한 국물과 쫄깃한 돼지고기가 잘 어우러진 족살찌개가 탄생한다.

황복규(67) 문경시 가은읍 왕릉3리 이장은 문경탄광과 족살찌개의 산증인이다. 그는 “75년부터 87년까지 광부로 일할 당시 탄광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식당에 예약을 해놨다가 일을 마치고 나오면 동료들과 (족살찌개를) 나눠먹었다”고 했다. 황 이장은 또 “탄광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기와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먹는 족살찌개를 먹으며 그때를 추억하곤 한다”고 말했다.

문경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족살찌개 전문식당’을 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막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광부들을 위한 특별한 밥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사업이다.

사업 시작 후 1호점인 수정식당을 시작으로 황토성, 매봉산, 메밀꽃필무렵, 한우리식당 등 5곳을 족살찌개 전문식당으로 지정했다. 손님을 가장한 전문 심사위원 4명이 맛과 서비스를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방식으로 진행된 심사는 음식의 맛, 친절도, 접근성 등 까다로운 평가를 거쳤다.

최근 찾은 수정식당은 100㎡ 남짓한 내부에 테이블이 5개 놓여 있었다. 족살찌개 가격은 1인분에 9000원. 족살찌개 외에도 갈비찜이나 낙지볶음, 제육볶음, 갈치찌개 같은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족살찌개를 주문하자 김치, 감자조림, 배추전, 두부구이, 파래무침, 가지볶음 등 밑반찬들이 깔렸다. 곧이어 버너에 올려진 족살찌개가 등장했다. 보글보글 끓는 족살찌개 국물을 흰밥에 끼얹어 한 입 먹으니 칼칼한 국물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온몸에 탄가루가 묻은 광부들이 즐겨 먹었을 때를 연상하니 그 시원함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임순(68) 수정식당 사장은 “돼지고기와 갖은 채소의 맛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게 비결”이라며 “오래전부터 내려온 레시피대로 만들기 때문에 과거 광부들이 먹던 맛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시는 족살찌개 전문식당을 지정해 각종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홍보할 예정이다. 식당에는 족살찌개 로고가 새겨진 식기류도 제공하고 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예로부터 탄광이 성행했던 우리 지역에서 광부들이 즐겨 먹었던 족살찌개에 스토리를 더해 지역의 특색이 녹아 이어갈 수 있는 음식 브랜드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경은 족살찌개를 먹고, 한 번쯤 돌아볼 만 한 곳이 많다.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과 문경생태미로공원, 석탄박물관, 드라마세트장 등이 대표적인 지역 관광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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