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작(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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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서독이 친족방문 협정을 맺은 것은 1963년이었다. 27년전의 일이다. 양독이 첫 정상회담을 연 것은 1970년 3월이었다. 브란트 서독총리가 먼저 동독을 방문해 슈토프 총리와 첫 대면했다. 20년 전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서로 입장과 주장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때 동독쪽이 내놓은 제의중엔 상호 유엔가입안도 들어 있었다.
동서독이 스포츠 문제로 처음 만난 것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훨씬 빠른 1955년 이었다. 멜버른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문제 때문이었다. 합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듬해 올림픽에 이들은 하나의 깃발을 들고 참가할 수 있었다. 그후 독일은 단일팀으로 세번이나 올림픽에 나갔다.
1974년엔 양독이 「체육관계 규칙에 관한 의정서」에 합의했다. 동서독은 해마다 체육단체들끼리 행사일정을 정기적으로 협의해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의 일이다.
오늘의 독일통일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일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수없이 많은 협정과 조약과 약속과 실천들을 산더미처럼 쌓는 10년,20년의 공을 들였다.
또 한쪽에서는 전화선 개설,우편교환협정 등을 맺고,다른 한쪽에선 문화협정에 서명해 예술가,작가,화가,음악인들이 십상으로 안방 드나들듯 양독을 오고 갔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민간인 중심의 교류가 이루어진 점이다. 사려깊은 정치인들은 정치인들 사이의 교류는 아무래도 그 입장 때문에 이해가 엇갈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문화인들끼리의 교류는 다르다. 한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체육인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노력들이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요즘 통일축구 교류다,뉴욕의 남북한 영화제다,또 남북 정상회담에,유엔 동시가입 등의 문제를 놓고 모처럼 서로 웃는 얼굴로 만나고 있다. 그전에 독일에서 많이 듣고 보아온 일들이다.
그러나 그 독일조차도 통일의 여정은 길고 멀기만 했다. 우리는 독일이 몇십년 걸려 한 일을 지금 막 시작하고 있다. 그나마 큰 변화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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