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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없이 떠난 학살자...역사적 심판 물거품" 광주는 분노했다 [전두환 1931~202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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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90)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을 겪었던 광주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 5·18 단체 등은 “역사적 심판을 내리지 못했다”는 허탈감과 함께 “끝내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사죄 없이 떠났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5·18 단체 “사죄 없이 떠난 학살자”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후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후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후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후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성과 사죄는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 영령을 모독하고 폄훼하며 살았던 학살자 전두환은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5·18 기념재단 등은 죽음 직후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왔다”며 그의 생애를 평가했다.

5·18 기념재단 등은 “전두환 측의 재판 지연 전략 때문에 역사적 심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며 마무리 짓지 못한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전했다.

“재판 지연 전략에 책임 못 물어”

23일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가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재판 진행과 국가장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3일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가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재판 진행과 국가장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었다”고 증언해온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었다.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 등 유족들이 전 전 대통령을 2017년 4월 형사고소했지만, 1심 판결은 3년 뒤인 지난해 10월에 내려졌다. 항소심도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오는 29일에서야 결심 공판이 예정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 측의 관할 법원 이전 신청과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기일 연기, 증인들의 불출석이 잇따랐고 5월 단체와 유족들은 “재판 지연 전략”이라고 반발했었다.

5·18 기념재단 등은 “유죄 판결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5·18 진상규명과 관련해 의미 있는 재판”이라면서도 “전두환 측의 지연 전략에 말려 1심 재판을 신속하게 마무리 못해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 같다”고 했다.

형사는 기각, 민사는 진행 전망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씨가 지난 8월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3번째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씨가 지난 8월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3번째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사망하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하도록 돼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전 전 대통령 재판도 다른 형사재판처럼 공소기각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차후 재판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5·18 단체 등은 민사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비오 신부 유족과 5월 단체들은 2017년 6월 전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회고록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었다.

1심 재판부가 전 전 대통령 등이 5·18을 왜곡하고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인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해 계속 진행이 어렵지만, 민사재판은 아들 전재국씨도 피고이기 때문에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가장, 일고의 가치도 없다” 

지난 6월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월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의 국가장 여부에 대해 “터무니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며 일축했다. 이들은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국가장이 결정되자 “12·12와 5·18을 일으킨 죄인이고 한 사람의 죽음은 조용히 애도하면 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그의 아들 노재헌씨가 대신해 광주를 찾아 5·18 묘역을 참배하고 사죄의 뜻을 전했었다. 이를 놓고 5·18 단체는 “단 한 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고 2011년 회고록에서 5·18을 왜곡한 장본인”이라며 거짓 사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일각에서는 신군부 세력 중 유일하게 가족이라도 사죄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5·18 기념재단은 “5·18 학살 책임자로서 전두환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저지른 죄를 끝까지 밝히고 아직 생존한 신군부 세력에 대해서도 죄를 물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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