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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曰] 차별금지법 차별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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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30면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관심과 노력이 없었던 것도,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니다. 첫 시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0월이다. 법무부가 정부 입법을 추진했다. 두 번째는 2008년 1월 노회찬 의원 등 10명의 발의였다. 세 번째는 2011년 9월 박은수 의원 등 11명, 네 번째는 같은 해 12월 권영길 의원 등 10명이었다. 다섯 번째는 2012년 11월 김재연 의원 등 10명이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2013년 2월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었다. 법안 명칭은 ‘차별금지법’ ‘차별금지기본법’ 등 대동소이했다. 앞선 다섯 차례는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마지막 두 차례는 자진 철회했다. 7년간 7차례나 입법을 시도했던 법안이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집권기인 2016년 개원한 제20대 국회는 입법 시도조차 안 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조차 못 했던 정당이라 기대할 것도 없었다.

수년째 발의한 뒤 자동폐기 반복
차별 피해는 남이 아니라 우리 일

그해 가을 ‘촛불 혁명’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대통령 선거가 2017년 4월로 당겨졌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기독교계 관계자들을 만나 “(차별금지에 관한 내용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돼 있다.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말로 그치지 않았다. 그해 7월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차별금지법’의 ‘ㅊ’ 자도 없었다.

2020년 5월,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이 180석 가까이 차지한 제21대 국회가 개원했다. 한 달 뒤 6월 장혜영 의원 등 10명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10명에는 민주당도 2명(권인숙, 이동주) 있었다. 올해 6월 이상민 의원 등 23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8월에는 박주민 의원 등 13명 ‘평등법’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하지 말라 하고 국정과제에서 빼도, 필요한 건 하는 게 맞다. 민주당은 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헌법만 빼고 다 바꿀 수 있다. 지난해 ‘임대차 3법’과 ‘공수처법 재개정’ 처리 때 확인했다. 올해 5월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성립기준 10만명을 달성했다.

웬걸.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 법사위는 법안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 날(2024년 5월 29일)로 미뤘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도 있게 심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다음 날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또 ‘충분한 시간’ 타령이다. 지금까지 발의된 관련 법안은 베껴 쓴 듯 거의 같다. ‘헌법상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고.

한국 등 세계 20여 개국이 11월 20일을 ‘트렌스젠더 희생자 추모의 날’로 기념한다. 1998년 11월 증오범죄로 피살된 미국 30대 트랜스젠더 여성 리타 헤스터를 추모해 제정했다. 올해 3월 트랜스젠더 여성 변희수 육군하사를 잃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차별’이다. 지난달 법원은 변 하사가 생전 제기한 강제 전역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그렇다고 죽음을 되돌리진 못한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달랐을 거다.

1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커밍아웃한 자녀를 둔 두 엄마가 성소수자 부모로 살아가는 얘기다. 소수자 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깨닫는 두 엄마는 남이 아니다.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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