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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보급, 전 세계 9배 늘 때 한국은 24배로 뛰어 급가속 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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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08면

[SPECIAL REPORT]
전기차의 공습

현대차가 올해 선보인 전기차 ‘아이오닉5’는 현대차그룹의 E-pit 충전소에서 기존 충전 시간보다 최대 50% 줄어든 약 18분 안에 80% 충전까지 가능하다. [사진 각 사]

현대차가 올해 선보인 전기차 ‘아이오닉5’는 현대차그룹의 E-pit 충전소에서 기존 충전 시간보다 최대 50% 줄어든 약 18분 안에 80% 충전까지 가능하다. [사진 각 사]

# 회사원 심지혜(41)씨는 올해 3월 자가용을 기존의 디젤차에서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로 바꿨다. 현재까지 결과는 대만족이다. 심씨는 “디젤차는 연비가 가솔린차보다 좋은데도 매달 출퇴근하면서 12만원 이상의 연료비가 들었다”며 “지금은 매달 3만원 이하의 전기료가 들 뿐”이라고 전했다. 또 기존 자가용은 주행거리 1만㎞마다 엔진오일을 교체해야 해서 여기만 해도 4개월에 15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전기차엔 이런 유지비가 들지 않아 흡족하다.

# 변호사 문모(38)씨는 최근 제네시스의 전기차 ‘GV60’ 구매 계약을 했다. 대기 수요가 많아 출고까지 1년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이 차량이 탑재한 V2L(Vehicle to Load) 기능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다. 차내 고전압 대형 배터리의 전력을 외부로 끌어 쓸 수 있는 기능이다. 문씨는 “V2L로 캠핑과 차박(차내 숙박), 낚시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다”며 “전기차는 요즘 같은 때에 더욱 유용한, 바퀴 달린 거대한 스마트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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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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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휩쓴 전기차 열풍이 국내로도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희소했던,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차를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다. 6년 전인 2015년만 해도 국내 전기차 보급량은 5712대에 그쳤다. 지난해는 13만4962대로 불과 5년 만에 23.6배가 됐다. 매년 4~5배씩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전기차 보급량이 72만8217대에서 685만327대로 9.4배가 된 것에 비해서도 가파른 성장세다(이상 누적 기준). 내연기관을 가진 하이브리드차가 아닌, 100% 배터리로 움직이는 순수 전기차만 집계한 수치다. 올 들어서도 급증해서 9월 말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20만2000대에 이른다.

글로벌 인기 역시 통계로 쉽게 알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 4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4%였던 순수 전기차의 시장점유율(전체 자동차 대비)이 2025년 최대 17%, 2030년 최대 34%까지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략 10년 후엔 도로 위의 자동차 5대 중 2대는 전기차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전기차가 2010년대를 지나 2020년대 들어 한층 잘 팔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배경을 지목한다.

기아가 올해 선보인 ‘EV6’. [사진 각 사]

기아가 올해 선보인 ‘EV6’. [사진 각 사]

1 각국의 친환경 드라이브=각국 정부의 탈(脫)탄소 등 친환경 정책 강화가 작용했다. 특히 주요국들은 매연을 전기차보다 훨씬 많이 뿜어내는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에 서두르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모든 전기차의 약 94%는 북미(미국·캐나다)와 유럽(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스웨덴·네덜란드), 동아시아(한국·중국·일본)의 12개국에서 판매됐다. 그리고 이들 나라는 공통적으로 지난 수년간 전기차 전환에 사활을 걸었다.

자동차의 본고장이면서도 환경 관련 규제에 적극적인 유럽이 대표적이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영국은 2035년, 프랑스는 2040년부터 각각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이하 신차 기준)하기로 했다. 내연기관차 제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독일,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마저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한 것이다. 2016~2019년 집중적으로 이 같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도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하는 등 유럽 못잖게 적극적이다. 최근 미국 의회는 전기차 충전소 확충 등에 75억 달러(약 8조9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기도 했다. 유럽과 함께 세계 양대 전기차 시장을 형성한 중국 역시 2035년부터 자국 내의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UN 총회 연설에서 “2060년 이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사이 한국도 전기차 충전소 확충과 보조금 지급 등으로 발을 맞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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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조금 지급은 소비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가격과 직결된다.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이끈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예컨대 독일의 전기차 판매량은 2019년 11만대에서 지난해 39만대로 1년 만에 3배 이상이 됐다. 내연기관차에 대한 국민적 애착이 매우 강한 나라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이는 지난해 6월부터 독일 정부가 보조금을 기존 액수의 2배로 늘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6월 기준 유럽의 전기차 보조금은 한 대당 평균 1만100달러(약 1200만원)에 달했다. 한국은 올해 이보다 많은 1400만~1500만원대의 보조금을 지급 중이다.

2 기업들의 빠른 변신=각국의 이런 정책은 기업들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통상 자동차 산업은 생각보다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 업종’으로 통한다.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제품을 만드는 데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부품이 약 3만 개일 만큼 복잡하고 협력사도 많아서 관리·공급이 원활하려면 변화 시도보다 안정 도모가 우선이어서다. 하지만 각국이 빠르면 수년 뒤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스테디셀러인 테슬라의 ‘모델Y’. [사진 각 사]

스테디셀러인 테슬라의 ‘모델Y’. [사진 각 사]

가뜩이나 테슬라 같은 전기차 제조사들의 시장 선점에 자극 받았던 기성 완성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전환에 박차를 가하게 된 이유다. 미국의 GM은 2035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했다. 유럽에선 폴크스바겐이 2030년까지 신차 절반을 전기차로 출시하기로 했고, 메르세데스-벤츠도 2030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혼다는 2030년까지 전기차·연료전지차 비중을 전체 신차의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도 현대차가 2035년부터는 유럽에서 전기차만 판매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들 기업은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8월 한국에서 ‘쉐보레 볼트 EUV’를 출시한 GM은 2025년까지 40조원을 투입해 30종의 전기차를 글로벌 시장에 새로 선보이기로 했다. 내년에 국내에도 출시될 폴크스바겐의 첫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4’, 올해 국내 출시를 앞둔 메르세데스-벤츠의 첫 전기 세단 ‘더 뉴 EQS’ 등도 각 사의 고강도 투자의 산물이다. 수년 전만 해도 테슬라 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던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소비자가 과거에 비해 발걸음을 전기차 쪽으로 옮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수입차보다 사후관리 서비스를 받는 데 용이한 국산 전기차도 늘고 있다. 2025년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전기차 23종을 새로 선보이기로 한 현대차그룹은 당장 내년만 해도 내연기관차(5종)보다 전기차(7종)를 더 많이 신차로 내놓는다. 현대차가 첫 전기 세단 ‘아이오닉6’ 등 5종, 기아가 중저가 소형차 시장을 겨냥한 ‘니로 EV’,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SUV 시장을 겨냥한 ‘GV70 EV’를 각각 출시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3 소비자의 인식 변화=이처럼 수년전보다 성능·디자인·편의성 등이 개선된 전기차가 많이 출시되더라도 소비자의 인식 변화 없이는 흥행도 쉽지 않다. 그런데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가 올해 전 세계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기차를 구매하거나 대여할 의향이 ‘매우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5%로 2019년 조사 때(1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도 이제는 전기차를 내연기관차와 대등한 선택지로 보는 분위기다.

포르쉐의 ‘타이칸4S’. [사진 각 사]

포르쉐의 ‘타이칸4S’. [사진 각 사]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테슬라가 전기차를 ‘움직이는 가전(家電)’으로 인식하도록 차별화에 성공한 게 소비자들한테 수년간 좋은 인상을 남겼다”며 “이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전기차가 계속 등장하고, 이를 경험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퍼진 ‘타보니까 좋더라’는 입소문에 시장 활성화가 빨라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전기차의 저렴한 연료비·유지비와 저소음, 출발과 동시에 최대 토크(회전력)를 내는 가속감, V2L 같은 내연기관차엔 없는 기능 등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는다. 심지혜씨는 “유지비 외에도 소음이나 진동이 없어 운전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며 “만족도가 높아 가족용으로 타던 다른 차도 8월에 전기차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소비자들이 아쉬워하는 단점도 적잖다. 한 번 충전에 주행거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최장 500㎞ 내외), 충전소 등 인프라가 부족한 것, 중고로 팔 때 내연기관차보다 감가가 심한 것 등이다. 다만 국내외 배터리 제조사들의 고강도 투자로 배터리 성능이 해마다 개선되고 있는 데다, 인프라 역시 각국 정부의 주도로 꾸준히 확충되고 있어 눈앞의 실망감보다는 향후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그렇다고 장기 전망에 대한 우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무기한 지급되진 않는 보조금 같은 단기 인센티브가 없어지면 전기차 생태계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번스타인리서치의 아른트 엘링호스트 애널리스트는 “보조금이 사라지면 전기차 판매량은 최소 3~6개월간 30~4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중론자들이 전기차의 경제성 우려 불식을 위해 인프라 확충과 배터리 성능 개선에 한층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는 이유다. 최현기 컨슈머인사이트 수석은 “충전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의외로 많은 소비자를 전기차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소”라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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