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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1대당 충전기 유럽은 3기인데 한국 0.5기 “실수요 많은 고속도 휴게소 급속충전기 늘려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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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09면

[SPECIAL REPORT]
전기차의 공습 

서울 시내의 한 대형쇼핑몰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대형쇼핑몰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뉴스1]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41)씨는 최근 전기차를 이용해 대구시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장길에 나섰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 전기차 충전기 사용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만 믿었는데, 휴게소에 다다를 때쯤 ‘사용 중’으로 바뀌는 통에 방전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전기차 충전기를 선점하기 위해 속도 경쟁을 벌이는 이른바 ‘충전 레이스’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씨는 “다른 전기차가 충전하길 기다리다간 도착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쫓기듯 다음 충전기를 향해 운전했다”며 “근처에 다른 전기차가 나타나면 추월당하지 않게 운전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전기차가 20만대 넘게 보급됐지만 운전자들은 여전히 ‘충전 인프라 확충’을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열쇠로 꼽는다. 전기차도 결국 운송수단인 탓에 이동하려는 경로에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기차는 배터리가 완전 방전될 경우 고출력 전용 충전차량을 불러야만 다시 운행을 할 수 있어 운전자들의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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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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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개발된 충전 인프라는 크게 두 가지다. 급속 충전기와 완속 충전기다. 급속 충전기는 20~30분만 충전해도 200㎞ 정도를 달릴 수 있고, 완속은 대개 가정이나 사무실용으로 전기차를 한 번 충전하는 데 10시간 정도 걸린다. 국내에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인데, 여전히 운전자들이 불편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꼽힌다. 첫 번째는 충전기 자체가 많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9만1927기(급속 1만3731기, 완속 7만8196기)다.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만200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2대당 1기 정도 밖에는 안되는 셈이다.

반면 전기차 보급에 열을 올리는 미국·유럽 등지는 전기차보다 충전기가 더 많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기차 1대당 3대의 충전기가 설치돼 있고, 미국과 일본은 각각 전기차 1대당 1.8기와 1.5기의 충전기가 보급돼 있다. 최현기 컨슈머인사이트 수석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선 충전 인프라 부족과 긴 충전시간 등에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지속적으로 충전기 보급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도 전국 13개 정부 청사에 충전기 579기를 추가 설치한다고 밝혔다. 전국 77개 경찰서에도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차 충전기 143기를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이렇게 설치된 충전기는 경찰·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이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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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수요-공급의 미스매치다. 급속보단 완속이 대부분인 데다 설치된 급속 충전기마저 수요가 몰리는 곳엔 없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사용량 상위 급속 충전기 10기 가운데 8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다. 교통량이 많아 그만큼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급속 충전기 1~2대가 전부다. 있는 충전기라도 잘 운영되면 다행인데, 고장으로 수리 중인 곳도 적지 않다. 이씨가 고속도로에서 ‘충전 레이스’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급속 충전기 4783기 가운데 가장 많은 27%가 공공기관에 설치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에 한 번도 쓰이지 않는 급속 충전기가 전국에 49기나 된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급속충전기는 수요가 높은 고속도로 또는 주요 국도 휴게소에 우선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며 “형식적으로 확대할 게 아니라 실제 수요가 많은 곳을 따져 실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충전기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와 함께 민간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충전기를 어디에 설치하느냐보다는 얼마나 공급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며 “민간이 충전시장에 진출하면 당연히 수요가 많은 곳 위주로 공급할 테니 충전기의 수요-공급 미스매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직 민간 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게 걸림돌이다. 최근 전기차가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등록 자동차 전체(2478만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못 미친다. 김태환 딜로이트 컨설팅 자동차 부문 리더(상무)는 “전기차 충전시장에서 수익성이 확보되는 시점은 전기차 보급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는 2023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최근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움직임을 두고 전기차 충전 수익이 아니라 인프라를 선점함으로써 전기차 시대에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본업과 무관한 기업까지도 충전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게 이 같은 해석의 배경이다. 유통업체인 신세계그룹의 계열사 신세계아이앤씨가 대표적이다.

신세계아이앤씨는 지난 10월 아마노코리아와 업무협약을 맺고 전기차 충전 사업에 진출했다. 롯데정보통신도 지난달 전기차 충전기 제조 업체인 중앙제어를 인수키로 하면서 충전 사업에 진출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직접 충전기를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민간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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