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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중 경쟁 속 ‘진실의 순간’ 다가온다”…한국 ‘안보 지도’ 세미나

중앙일보

입력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니어재단 '외교의 부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니어재단 '외교의 부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현재의 동북아 역학관계와 북핵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국제관계를 견인하기는 어렵다. 반면 국제관계에서 진전이 있으면 남북관계까지 풀릴 수 있다. ‘외교의 부활’이라는 책의 부제로 ‘동맹, 연합, 공존, 자강’을 강조하는 이유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5일 민간 싱크탱크 니어재단이 개최한 ‘새로 그리는 다음 10년, 한국의 외교ㆍ안보 전략 지도’ 정책 세미나 기조 발제에서 “외교는 이제 경제 및 첨단 과학기술과 분리될 수 없고, 강력한 안보 태세도 같이 가는 통합된 역량, 즉 자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처럼 말했다.

미ㆍ중 패권 경쟁 속 '외교의 부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인삿말을 통해 "외교가 국내 정치의 하위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외교의 부활'이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설정 과정에 나침반이 될 수 있길 기대했다. [연합뉴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인삿말을 통해 "외교가 국내 정치의 하위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외교의 부활'이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설정 과정에 나침반이 될 수 있길 기대했다. [연합뉴스]

이날 세미나는 니어재단이 편저한 외교ㆍ안보 전략서 ‘외교의 부활’ 출간을 기념해 열렸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대선 선거전이 한창이지만, 정책 토론 대신 지엽적으로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책략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ㆍ중 간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세기적 세력 전이기에 한국의 외교ㆍ안보가 닫힌 민족주의나 이념적 편향성으로 극심한 국론 분열의 늪에 빠지고 있는 현실을 대단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외교가 국내 정치의 하위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외교의 부활’이 새 정부의 안보 전략 설정 과정에서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했다.

‘외교의 부활’은 국내의 저명한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이 1년여 간 수차례의 발표와 토론을 벌인 결과물로, 이날 출간됐다. 구체적으로 ▲북핵 문제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간 안보 협의체) ▲글로벌 첨단 기술 공급망 ▲북한의 도발 대응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와 한ㆍ미 상호 운용성 ▲한ㆍ미 동맹의 대중국 견제 역할 ▲한ㆍ미 연합훈련의 복원 ▲중국 인권 문제 ▲미국 중거리 미사일 배치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개편 등을 주요 10개 과제로 꼽고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외교의 부활’은 이런 과제들을 ‘복합 과제’로 명명했다. 이슈 간 연계성이 크고,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北 중심' 외교관서 벗어난 접근 

15일 '외교의 부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한 이홍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연합뉴스]

15일 '외교의 부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한 이홍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연합뉴스]

실제 ‘외교의 부활’은 그간 한국 외교가 중심을 북핵ㆍ북한 문제에 뒀던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미ㆍ중 간 전략 경쟁을 대전제이자 상수로 배치해 먼저 해당 사안의 본질을 파악한 뒤 연계 내지는 하위 개념으로 북핵 문제를 다뤘다. 하위 개념인 북핵 문제를 더 우선에 놓고, 이를 중심으로 상위 개념인 대미 및 대중 전략 방향을 결정하는 식의 접근은 ‘왝 더 독(wag the dogㆍ강아지 꼬리가 몸통을 흔듦)’이라는 외교의 왜곡 현상으로 이어져 왔다.

윤병세 전 장관도 기조 발제에서 “경쟁과 충돌 요인이 증대하는 새로운 미ㆍ중 관계 속에서 한국이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maneuvering)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진실의 순간이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동맹을 활용하고, 유사 입장국들과 연합하고,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우리 나름의 지렛대를 자강 차원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집필진의 주요 발언.

韓 직면한 '외교의 부활', 전문가 진단은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외교의 부활’은 미ㆍ중 간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공존하며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결론은 동맹을 통해 미국을 믿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과연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어려울 때 미국이 완전한 ‘해결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이 상존한다. 미국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고민해 어떤 분야에서 힘을 키워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 제기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적으로 가장 양분화돼 있다. 이를 좁히려면 북한의 실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북한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끝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국제 문제와 대외 환경을 중심으로 북한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내년이 한ㆍ중 수교 30주년인데, 우리는 여전히 1992년 수교 당시의 프레임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국이 중요하고, 중국의 시장은 지속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의 압박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에 집중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소비재 수입에 의존하는 등 중국 시장 진출 전략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제 중국을 현실적으로 봐야 하며, 국익 극대화뿐 아니라 국익 손실 최소화도 중요한 외교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한ㆍ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외교와 글로벌 외교는 한국 외교의 열린 전략적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일본을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으로 볼 게 아니라 도쿄를 축으로 워싱턴과 베이징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스스로를 묶어놔서는 안 된다. 미ㆍ중 간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한ㆍ일이 공유하는 전략적 이익은 크다. 이런 이익을 넓히고 공유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국제연대 기초한 자강" "국익 중심 외교" 

토론자로 참여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교의 부활’에서 강조하는 자강은 국제연대에 기초한 자강으로, 국제적 역학관계와 경제ㆍ안보 간 함수 관계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하며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자강론이 중요하다”며 “미ㆍ중 간 전략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를 양자택일의 순간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책의 메시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또 한ㆍ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과 관계가 어그러져 있으니 대미 및 대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은 한ㆍ미 관계도 한ㆍ미ㆍ일 삼각 구도에서 파악하고, 한ㆍ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중국이 한국을 가볍게 대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서 보다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김기정 한국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한국은 어느덧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그 길목에서 정말 외교적 역량을 보여줘야 할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외교의 부활’이란 제목을 해석했다”고 말했다.

또 “외교에서 이념적 편 가르기에 대한 우려를 많이 공유하는데, 외교가 극단 대립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국제정치를 의리나 감성의 관점, 은혜를 주고받는 보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섰을 때 국익 중심의 관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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