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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해도 장학금 다 못받아" 돈 없는 지방대, 학생도 떠난다 [2021대학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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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17년 문 닫은 서남대학교의 안내판이 녹슨 채 방치돼 있다. 중앙포토

2017년 문 닫은 서남대학교의 안내판이 녹슨 채 방치돼 있다. 중앙포토

'귀환 불능 지점'
이륙한 비행기가 남은 연료로 기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지점이다. 이곳을 지나면 불시착하거나 추락하는 수밖에 없다. 지방대가 처한 현실도 비슷하다. 연료라 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한 가운데 학생은 이탈하고 있고 부실화의 늪을 빠져나오기 어렵다. 대학과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일 '빅딜'이 필요한 시점이라 지적한다.

중앙일보가 학생 수 3000명 이상인 대학 137곳을 분석한 결과, 비수도권 87개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452만원으로 서울권 28개 대학의 2001만원보다 549만원 적었다.

지역 내에서도 격차가 크다. 호남·제주 권역의 전남대나 제주대는 1인당 교육비가 1900만원 안팎이지만 최하위 대학은 800만원대에 그쳤다. 부산·울산·경남권도 부산대가 2000만원이 넘는 반면 최하위권은 1000만원을 넘지 못했다.

교육비 감소에 교육의 질 하락 '악순환' 빠진 지방대

2021년 지역별 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21년 지역별 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교육비는 주로 교수 인건비나 학교 시설, 학생 장학금 등에 쓰는 비용이다. 교육비 감소는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방대에선 강의와 각종 프로그램의 문을 닫는 곳이 적지 않다. 경북의 한 대학에 다니는 황모(23)씨는 "학교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성적 1등을 해도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2021년 지역별 대학 학생 중도 포기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21년 지역별 대학 학생 중도 포기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학생의 낮은 만족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는 '중도 탈락률'이다. 자퇴 등으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을 뜻하는 중도 탈락은 1인당 교육비가 적은 대학에서 대체로 높았다. 1인당 교육비가 가장 많은 서울권 대학의 중도 탈락률은 3.2%로 가장 낮다. 하지만 교육비가 가장 적은 경북권 대학은 중도 탈락률이 최상위권이다.

학생 이탈과 적은 교육 투자는 교육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청년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더 중요해진 취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권과 경기·인천·강원권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각각 66.1%, 63%를 기록했다. 경북권은 56.3%로 가장 낮고 경남권·호남권이 뒤를 이었다.

재정지원도 수도권 편중..."지방대 소멸 가속"

재정 악화와 교육 수준 하락 악순환에 빠진 지방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재정 악화와 교육 수준 하락 악순환에 빠진 지방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는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들에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돈을 나눠준다. 하지만 지방대들은 재정지원사업이 악순환을 더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이 여건이 좋은 서울권 대학에 편중돼 있다"며 "재정 약화와 지방대 부실을 더 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이 정부 지원 사업에서 더 많은 헤택을 받는 건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학 정보 공시자료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의 학생 1인당 정부 사업 수혜 금액은 746만원으로 지방대 평균 381만원의 2배 수준이다. 정부 지원도 빈익빈부익부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여론 부담에 지지부진한 대학 구조조정

지난 8월 23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학생회, 교수회, 직원 노조, 총동창회 대표들이 인하대를 기본역량진단에서 탈락시킨 교육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3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학생회, 교수회, 직원 노조, 총동창회 대표들이 인하대를 기본역량진단에서 탈락시킨 교육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정부가 하위 대학 지원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대학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반론도 있다. 재정지원 축소만으로는 경쟁력이 낮은 대학을 퇴출하지 못하고, 부실 대학만 늘린다는 지적이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는 "학생은 줄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 진학률이 60~70%에 달해서 대학이 근근이 연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경쟁력이 떨어져도 버티는 대학을 퇴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반발이 큰 지방대 구조조정에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9월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 52개 대학을 탈락시키면서도 각 대학에 '재도전 기회'를 준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김 교수는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지만, 칼날이 무뎌져서 이제는 대학이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지방대 퇴로 열어야"...구조조정 '빅딜' 촉구

지난 5월 10일 전북의 한 대학교 앞에서 우산을 쓴 학생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10일 전북의 한 대학교 앞에서 우산을 쓴 학생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대학 퇴출(폐교)이 어려운 배경에는 재산 처분 문제가 있다. 현행법상 학교법인은 학교를 폐교하면 소유 재산을 모두 국고에 헌납해야 한다. 설립자나 법인이 학교가 부실해져도 버티려는 이유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내 재산을 넣어서 만든 학교를 고스란히 헌납해야 하니 힘들어도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원을 마련해 부실 대학 폐교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매년 들어가는 교육비 지원을 줄이는 방안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부실 상태로 교육 예산을 계속 쓰는 '좀비 대학'의 퇴로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11일 오후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020년 제1차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11일 오후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020년 제1차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적절한 수준에서 재산권을 인정해주면, 스스로 문 닫을 대학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뒤떨어진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으면 절약한 교육비를 다른 대학에 투자할 수 있다"며 "몸집을 줄이고 특정 학과에 집중한 '강소(強小) 대학'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수조 원씩 늘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재원으로 쓰자는 제안도 나온다. 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를 전국 시도교육청에 의무 배분하기 때문에 학생 수가 급감하는데도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박남기 교수는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초등학생보다 적다"며 "중등교육에만 쓰는 교부금을 대학에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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