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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자’ 분노 아닌 웃음으로 되살렸다…SNL의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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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SNL코리아 리부트’ 시즌1의 ‘서민수업’ 코너. [사진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리부트’ 시즌1의 ‘서민수업’ 코너. [사진 쿠팡플레이]

“정치 풍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초년생 인턴기자가 대선후보들을 1대 1로 만나 묻는다. 후보들은 모두 “정치풍자 코미디가 없어진 게 유감. 대통령도 유머의 소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홍준표)” “전폭적으로 환영(심상정)” “아주 좋다고 보고(윤석열)” “원래 정치 개그가 제일 재미있죠(이재명)” 등 긍정적 답변을 했다. 6일 10회차로 막을 내린 ‘SNL코리아 리부트’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다.

정치풍자 코미디가 사라진 한국 방송계에서 ‘SNL코리아 리부트’(쿠팡플레이)의 순항이 화제다. 민감한 정치 이슈를 다루면서도 논란에서 비껴갔다. 그 비결은 뭘까.

2011년 tvN 시절부터 ‘SNL 코리아’를 이끌어온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과 대중문화평론가 등 전문가들에게 그 답을 들어봤다.

①여·야 균형 맞춘 ‘순한 맛’ 풍자

시사 이슈를 뉴스 형태로 다루는 ‘위켄드 업데이트’에서는 여야 관련 이슈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뤘다. [사진 쿠팡플레이]

시사 이슈를 뉴스 형태로 다루는 ‘위켄드 업데이트’에서는 여야 관련 이슈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뤘다. [사진 쿠팡플레이]

뉴스 형식으로 구성한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는 대장동 의혹을 비롯해 윤미향·이재명·윤석열·곽상도 등 여야의 주요 이슈와 인물을 고루 다뤘다. 천화동인 1호의 수익률에 대해서는 앵커(안영미)가 “이쯤 되면 워런 버핏 뺨칠 정도의 투자 천재 아닌가요?”라고 꼬집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손바닥 ‘王’자 논란은 ‘오징어 게임’ 패러디에 넣어 보여줬다.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게 툭 치고 가면서 과거 SNL보다 풍자의 수위를 낮췄다.

안 본부장은 “‘한쪽에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면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긴 어렵기에 균형감을 가지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10화에서 ‘대장동 사는 김창수’로 등장한 조진웅은 인터뷰 중 손에 쓴 ‘王’자를 보여줬다. 여당의 이재명, 야당의 윤석열 후보와 연관된 이슈를 동시에 등장시켜 묘한 균형을 맞춘 것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부담스러운 구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기계적 균형을 맞추면서 너무 순한 맛이 되긴 했지만, 정치풍자가 사라졌던 시기 끝에 생겨난 코미디라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하면서도, “커뮤니티, 인터넷에 더 센 콘텐트가 많은 만큼 풍자의 수위에 대해 앞으로 SNL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②인턴기자 캐릭터로 메가히트

‘인턴기자 주.현.영.입니다’로 메가 히트를 친 ‘주현영’ 캐릭터도 긴장감을 녹이는 역할을 쏠쏠히 했다. 2회에 처음 등장한 주현영 인턴기자의 첫번째 하이라이트 영상은 10일 기준 유튜브 조회 수 609만회를 기록 중이다.

안 본부장은 “20대 청년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하는 풍자에 목말라 있었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며 “20대를 대변하는 크루로 나온 주현영이 민감한 질문도 자신이 하면 웃어넘길 수 있도록 ‘인턴기자’ 캐릭터에 푹 빠져 너무 잘해줬다”고 평가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원래 SNL에서 앵커가 집중을 받는데, 이번엔 주기자에게 모든 포커스가 쏠렸다”며 “처음에 예상치 못한 논란이 크게 일었던 걸 오히려 ‘성장 스토리’로 극복한 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효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섭외한 ‘주기자가 간다’의 경우 일견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현장에서는 모두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의 만남에서는 ‘찢청’ 패션을 언급하고, 휴가 때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수라’ 중 어떤 영화를 보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의 조회 수는 10일 기준 26만회다.

‘주기자가 간다’에 대한 정치권 반응도 긍정적이다. A후보 캠프 관계자는 “너무 인신공격성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풍자라면, 좀 쓰리긴 해도 재미로 웃고 넘길 수 있는 것 같다”고 했고, B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의 정제된 면이 아니라 평소 모습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어, 정치인에게도 꼭 독은 아닌 것 같다”고 언급했다.

③신생OTT, “자유도 100%”

지난해 12월 문을 연 신생 OTT 채널 ‘쿠팡플레이’를 통해 방송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tvN은 2011년 미국 NBC의 간판 코미디인 SNL의 포맷 라이선스를 구입, ‘SNL 코리아’로 만들어 7년간 시즌 9까지 방영했다.

안 본부장은 “기존 채널이었다면 내부적으로 자체 필터가 걸렀을 수도 있는데, 이번엔 내용에 제약 없이 제작 자유도가 거의 100%”라고 흡족해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잘 다루지 않는 시사 이슈를 골라 얘기하며 풍자 코미디의 정체성을 보여줬다”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부동산 등 더 큰 이슈도 함께 다루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본부장에 따르면 ‘SNL코리아’ 시즌 1~9를 함께한 제작진 대부분이 이번 ‘SNL 리부트’에도 참여했다. ‘SNL리부트’는 곧 시즌2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시청층이 제한된 플랫폼이란 한계는 있다. ‘쿠팡플레이’는 쿠팡 회원 중 로켓와우 서비스 이용자만 볼 수 있다. 쿠팡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로켓와우 이용자는 약 475만명으로 전 국민의 약 10%만 접근 가능한 플랫폼인 셈이다. 유튜브 ‘쿠팡 플레이’ 채널에선 하이라이트 영상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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