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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이슈에 뜬 근육 약물···"성관계도 늘더라" 못끊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속 토르와 헐크의 모습. 매스컴은 남성성이 강한 남성의 신체를 근육질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속 토르와 헐크의 모습. 매스컴은 남성성이 강한 남성의 신체를 근육질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벌크 업(bulk up·근육량을 키우는 것)한 후 일자리를 구하고 돈도 더 벌게 됐다. 성관계 횟수도 늘면서 자신감이 더 생겼다.”

25년간 미국에서 조연 배우로 활동한 티머시(가명·남)는 지난해 ‘몸짱’이 되기 위해 경기력 향상 약물(PED·스테로이드 등 운동 능력 강화 약물)에 손댔다가 2년째 끊지 못하고 있다.

약물을 접할 당시 티머시는 코로나19로 일이 끊겨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디션장에서 만난 경쟁자들은 자신과 달리 “신체적인 완벽함”을 뽐내고 있었다. 단시간 우락부락한 근육을 키워나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 인플루언서들이 부러웠다..팔·등·가슴 등 근육 운동에 매진하던 그였지만, 더 빨리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결국 스테로이드제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복용 석 달 만에 티머시의 몸집은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일도 덩달아 잘 풀렸다. 티머시는 “7개의 TV쇼에서 섭외가 들어왔다”며 “내가 보기에도 스스로가 더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8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사이클링 선수. 약물 복용이 금지된 직업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통해 근육을 강화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8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사이클링 선수. 약물 복용이 금지된 직업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통해 근육을 강화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지난 5일(현지시간) ‘수퍼 히어로처럼 보이게 하는 공공연한 비법’이란 기사를 통해 티머시와 같이 일반인 사이에서 무분별한 약물 복용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 PED를 투약하는 건 불법이다. 그럼에도 직업 운동선수뿐 아니라 동네 헬스장에서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세가 됐다면서다.

최근 캐나다의 유명 헬스 트레이너 그렉 듀셋이 한국 가수 김종국씨를 향해 ‘로이더(약물을 사용해 근육을 키운 사람이라는 뜻)’ 의혹을 제기하면서 한국에서도 ‘근육 약물’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는 “황당하다”며 사실무근이란 반응이다.

VOX가 진단하기엔 매스컴을 통해 근육질 남성의 신체만이 이상적이라는 고정관념이 확산되는 게 문제다. 영화 속 수퍼 히어로물에 등장하는 남성의 모습이 왜곡된 신체상을 부추기는 식이다.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트레이너인 애런 윌리엄슨은 “배우들은 영화 촬영에 앞서 하룻밤 사이에 수퍼 히어로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PED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며 “아마추어 인플루언서들도 종종 복용하는데, 스스로 부작용을 초래할뿐 아니라 그를 추종하는 팔로워들에게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2000년대 들어 일반인이 약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BBC 방송의 2014년 보도에 따르면 운동 효과를 극대화 하는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 보충제가 2001년 대비 2011년에 미국에서만 3배 넘게 처방됐다.

캐나다 유명 트레이너 그렉 듀셋. 가수 김종국씨의 근육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며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캡처]

캐나다 유명 트레이너 그렉 듀셋. 가수 김종국씨의 근육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며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캡처]

전문가들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위험을 가볍게 여기는 의료계의 분위기도 일반인들의 복용을 더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남캘리포니아대 루스 우드 신경과학 교수는 “통상적인 상황에서 의사들은 정상적인 성인 남성에게 호르몬 보충제를 처방해선 안 된다”며 “공중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저렴하고 일반적인 스테로이드 사용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PED 오남용 관련 연구는 제한적이라고 한다.2018년 미 국립마약남용연구소 보고서는 “불법 약물 사용 관련 조사가 스테로이드를 포함하고 있지 않아 실제 유행 정도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과거 연구는 주로 중·고교 청소년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성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구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심부전, 동맥경화나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해리슨 포프 하버드 의과대 교수는 “최근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한 역도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을 비교한 연구에서 장기 복용자 86명 가운데 3명이 45세 이전에 심장마비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54명의 대조군에서는 심장마비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 PED의 효과성과 장기 부작용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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