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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인생 2막 고민 풀어줍니다…수업료 없는 이 학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8)

어느 어린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니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의 생각이 순진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답이 아니어서 실소가 나왔지만 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까. 아이가 볼 때 어른은 키가 크고 힘도 세며 무엇보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상상에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이가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른이 되어보니 해야 할 일이 벅차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리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병으로 몸도 편치 못하다. 이처럼 어른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니.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솔깃한 일인가.

원제는 타임 에세이스트 로저 로젠블라트가 쓴 『Rules for Aging』이다. 유쾌하다는 내용은 없는데 출판사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붙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떠하랴. 우리가 그저 책을 유쾌하게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저자는 나이 들어가며 갖추어야 할 행동 지침 등 여러 가지 조항을 열거했다. 인생을 살며 터득한 경험이라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늘어가고 행동이 더디어지며 또 여기저기 몸도 아프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누구도 자기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소외감이다. [사진 pxhere]

나이가 들면 주름이 늘어가고 행동이 더디어지며 또 여기저기 몸도 아프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누구도 자기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소외감이다. [사진 pxhere]

첫째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일을 지나치게 고민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하나의 점일 뿐이다. 한편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란 말도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을 지나치게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그리 걱정하지 말 일이다.

둘째 ‘당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조항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자신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듯이 남도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소신껏 살아갈 일이다.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남은 인생을 훨씬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셋째 ‘서른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라.’ 요즘 금수저, 흙수저 따지며 자신의 처지를 부모 탓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시의에 맞는 적절한 조언이다.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세 가지 기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첫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둘째 약하게 태어나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삼았다. 이른바 걸림돌을 오히려 디딤돌로 삼은 지혜다. 부의 세습이 만연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는 자수성가한 부자가 많다. 저자는 나아가 이를 스물다섯으로 낮추라고 한다. 20대가 생각해 봐야 할 문구다.

이런 조항도 있다. ‘행복한 인생은 길어봤자 5분이다.’ 얼핏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간다. 사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원하는 바를 이루면 또 다른 것을 바라며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찍이 어느 현인은 ‘행복은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예나 물욕은 자제하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만족할 일이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은퇴 후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인생학교'는 딱 좋은 배움의 터다. [사진 pxhere]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은퇴 후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인생학교'는 딱 좋은 배움의 터다. [사진 pxhere]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어른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머리도 빠지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지며 눈도 어두워진다. 주름이 늘어가고 행동이 더디어지며 또 여기저기 몸도 아프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루어 놓은 것도 없으며 누구도 자기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소외감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게 현실인 것을.

알랭이 그의 행복론에서 얘기했듯이 그래 보았자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식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적지 않다. 중년이 되면 평소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숲속의 나무들. 맑은 공기. 따스한 햇볕,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야생화, 그리고 속 깊은 친구.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전보다 기운이 쇠하고 몸도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큰 병이 없으니 신께 감사할 일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인생을 살며 얻은 지식이 많다는 의미다. 이런 지식을 죽기 전에 남에게 전해주는 것은 어떨까. 몇 년 전 이런 욕구를 가진 어른들과 함께 인생학교란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아는 것은 남에게 가르치고 내가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울 수 있다.

직장에서 오래 봉직했던 사람이 은퇴하면 막상 갈 데가 없어 집에만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해지고 부부간 사이도 좋지 않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가르쳐준다면 자존감도 가질 수 있고 자신 또한 스스로 성장함을 느낀다. 관심사가 같은 분야의 사람끼리 연구모임도 갖고 악기를 배워 환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얼마 전 어느 언론에 우리 학교가 보도되고 나서 많은 사람에게 문의가 오고 있다. 매체는 중장년들 사이에서 즐겁고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한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찾았는데 바로 인생학교가 그런 곳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생각해 보니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은퇴 후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우리 학교로 오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이런 학교가 전국으로 퍼져나가 은퇴가 기다려지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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