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갔더니 "골프 끊어요"…10년 골프친 내게 찾아온 이 병 [더오래]

중앙일보

입력 2021.10.22 09:00

업데이트 2021.10.22 17:54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7)

직장생활을 하며 몇 번의 승진을 거쳐 임원까지 올랐지만 가장 기뻤던 때는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한 날이다. 일단 연봉이 높아졌고 좀 더 책임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나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서실로 발령을 받았다. 사장 비서가 된 것이다. 책임자가 되어 한창 꿈에 부풀었는데 비서를 해야 한다니 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자 직장 선배가 고생은 하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과연 비서직이 나의 경력에 도움이 될까 의아해하며 일을 시작했다. 비서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 있는데 사장을 수행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사장이 골프라도 치는 날이면 사전에 부킹하고 사장이 동반하는 사람과 도착하자마자 라운딩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곤 했다. 그들이 필드에 나가면 골프가 끝날 때까지 클럽하우스에서 책을 보며 기다렸다. 그때 골프를 칠 줄 알았으면 연습이라도 했을 텐데 당시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군대 갔다 온 얘기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골프도 그렇다. 골프란 잘 치면 더 잘 칠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하고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아쉬운 운동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군대 갔다 온 얘기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골프도 그렇다. 골프란 잘 치면 더 잘 칠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하고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아쉬운 운동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세월이 한참 흘러 사장이 몇 번 바뀌고 나는 영업부장이 되었다. 어느 날 사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골프를 칠 줄 아냐고 묻는다. 치지 않는다고 답했더니 영업하는 데 필요할 거라며 어서 골프를 배우라고 권한다. 그저 건성으로 들었는데 몇 주가 지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2주 뒤에 임원들과 함께 골프를 나가니 일정을 비워두라는 것이다. 곧바로 골프연습장에 등록하고 몇 차례 레슨을 받았다.

얼마 후 임원들 그리고 부장 몇 사람이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른바 초보자인 내가 머리를 얹는 날이다. 차례를 기다려 티샷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연습했어도 타석에 들어서니 긴장이 되어 공이 잘 맞을까 불안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스윙하는데 아뿔싸 공이 빗맞아 몇 미터 가지도 못하고 멈추었다. 사람들이 웃으며 잘했다고 격려하는데 얼마나 창피한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나의 골프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 후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워 거래처 섭외도 하고 가끔 동료들과 라운딩을 같이 했다.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온 얘기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골프도 그랬다. 골프란 잘 치면 더 잘 칠 수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하고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아쉬운 운동이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면 할 얘기가 많게 마련이다. 필드에 나갈 때면 꼭 소형카메라를 지참했다. 넓게 펼쳐진 잔디를 배경으로 동반자와 기념사진을 찍거나 상대의 절묘한 샷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사진을 인화하여 액자에 넣어 갖다 주면 골프 접대를 받은 것보다 더 좋아했다. 거래처 고객과의 관계가 돈독해졌음은 물론이다.

친구들끼리 라운딩을 하는 날이면 서로 차를 갖고 가지 않으려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술을 한 잔 마실 수도 없고 노곤한 탓에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당번이 되어 친구를 픽업하기로 한 날이다. 새벽에 그의 집에 갔더니 친구 아내가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와 잘 치고 오라며 친구를 배웅했다. 나는 아내가 깰까 봐 까치발을 딛으며 나오는데 이 친구는 아내가 주차장까지 마중을 나오다니 놀랄 일이다. 한 친구가 '얘는 골프 치러 가기 전날 아내에게 서비스를 잘하나 봐' 하며 웃었다.

골프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몹시 상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정도 심리적 방어기제가 생겼다. [사진 pixabay]

골프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몹시 상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정도 심리적 방어기제가 생겼다. [사진 pixabay]

차를 타고 가며 친구가 이런 얘기를 전한다. 어느 날 용인에서 골프를 끝내고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운전하며 가는데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여행 가방을 힘들게 끌고 가고 있지 않은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노 수녀님이었다. 차를 세우고 타시라고 권하니 고맙다며 뒷좌석에 오른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까 거기서 걸어가면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고개 너머 동네 어디라고 하신다.

다행히 그 길을 알기에 수녀님을 모시고 원하는 곳에 내려 드렸다. 수녀님을 보내 드리고 그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제법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소박함. 둘째 수녀가 이사 가는 걸 보면 대부분 여행 가방 두 개를 넘지 않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는지 하는 깨달음. 친구가 골프를 치고 오며 수녀님에게 인생의 소중한 지혜를 배웠다.

골프를 배운 후 10여년간 참 열심히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를 마치고 오다가 다리가 저려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척추협착증이라며 이제 골프 같은 운동은 하지 말라고 권한다. 앞으로 골프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몹시 상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정도 심리적 방어기제가 생겼다.

사실 골프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다. 게다가 교통까지 밀리면 차를 운전한다는 게 고역이다. 비용은 또 얼마나 비싼가? 거기에 비하니 등산이 차라리 나았다. 요즘은 아내와 집 근처 야산에 틈틈이 오른다. 집에 있을 땐 별로 얘기를 꺼내는 일이 없는데 밖에만 나오면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산에 오르다 보면 같이 늙어가는 아내가 친구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길가에 있는 야생화도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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