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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꼬박 중증 장애인을 객석에 초청한 플루트 연주자

중앙일보

입력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를 30년째 이끌고 있는 플루티스트 배재영. [사진 사랑의플루트콰이어]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를 30년째 이끌고 있는 플루티스트 배재영. [사진 사랑의플루트콰이어]

플루티스트 배재영(61)은 1990년 일본의 한 공연을 보러 갔다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 “NHK오케스트라의 연주였는데, 객석에 장애인들을 먼저 입장시키더라고요. 당연하게 볼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 장면이 잊히질 않았어요.”

플루티스트 배재영,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 30주년 기념 연주회

KBS교향악단 부수석을 지낸 후 학생들을 가르치던 배재영은 공연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992년 12월 처음 열린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 무대였다. 플루트 연주자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연주했다. 여기에 지체 장애 등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있는 경기도의 한 시설을 객석에 초청했다. “보통 음악회 같으면 가장 비쌀 VIP석이나 R석에 자리를 마련해 초대했다.” 공연 마지막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장애인들이 무대에 올라와 함께 노래했다. “적게나마 티켓 수익금과 기부금도 모아서 전달했다”고 했다.

이달 8일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 공연이 열린다. 꼬박 30년째다. 처음과 같은 시설을 포함해 여러 단체의 장애인을 초청한다. 본지와 인터뷰에서 배재영은 “코로나19로 무관중 공연을 하게 됐던 지난해 말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말 무대를 열었다”고 했다. 시설에 전한 후원금은 1억원을 넘겼다. “5년 전쯤 한 언론이 문의를 해 세어보니 그렇더라. 적은 돈이지만 꾸준히 도와드리려 애썼다”고 했다.

30년 동안 무대와 객석은 늘 따뜻했다고 했다. “어떤 장애인분은 첫해부터 매년 오셨으니, 우린 같이 늙어가는 셈이다. 그들은 연주자들이 나오면 친구 맞이하듯 기쁘게 손짓을 하고, 연주가 시작되면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태도로 공연을 본다. 모두가 음악으로 진짜 소통을 한다. 연주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연주자들은 청중을 위한 간식을 챙겨놨고, 너무 추운 겨울에는 공연 시간을 따뜻한 낮으로 당겨서 열었다.

배재영은 “꾸준히 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30년이나 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30여년 전 일본의 객석에서 봤던 장면 외에 강렬한 동기가 있어서 한 일은 아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상황이 있어서 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이걸 꼭 좋은 데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악기를 잘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사회적·인간적으로 역할을 다하고 싶었다.”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 발가락으로 펜을 잡고 써준 감사편지 등이 그를 오랫동안 이끌었다고 한다.

플루트 오케스트라인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 [사진 사랑의플루트콰이어]

플루트 오케스트라인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 [사진 사랑의플루트콰이어]

30년동안 ‘사랑의 플루트 콰이어’도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플루트로 된 오케스트라인 ‘플루트 콰이어’에 처음에는 그의 제자들, 그 다음에는 플루트 후배들, 또 다른 연주를 같이하며 만난 연주자들,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이 합세했다. 현재는 50~60명이 소속돼 있다. “한국의 플루티스트는 거의 모두 거쳐갔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음악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그동안 브람스·드보르자크·모차르트의 교향곡 등을 플루트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초연하면서 이 악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선보였다.

올해 무대에는 플루티스트 100여명이 출연한다. 엘가 ‘사랑의 인사’,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등을 플루트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려준다. 이번 티켓 수익금도 장애인 시설에 모두 기부한다. 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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