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서민 말에 웃다가울다가…대선판 핵인싸 인플루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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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어준(왼쪽)씨와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중앙포토

‘폴리페서’와 ‘폴리테이너’는 선거철이 되면 늘 등장하는 단어다.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교수(professor)와 연예인(entertainer)이 일반 대중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폴리페서’와 ‘폴리테이너’보다 대중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입지가 커진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대선 국면의 키맨으로 등장했다. 과거 ‘나꼼수’ 시절부터 진보 진영의 강력한 스피커가 된 방송인 김어준씨나 ‘조국 흑서’의 저자인 권경애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등이 최근 정치권에선 주요 인플루언서로 꼽힌다.

이들은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다. 지난 2일 오전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생방송에 20여분 지각하자 온라인 게시판에 프로그램 ‘하차 소동’이 벌어진 게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가 TBS 지원 예산을 약 123억원 삭감해 책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 김씨가 지각해 이러한 소동은 더 화제를 모았다.

김씨 관련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여권 인사들은 그를 적극 엄호하고 있다. 지난달 5일 국회 과기정통위 국정감사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편파성을 비판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이를 반박했다.

지난해 9월 ‘조국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저자 진중권 전 교수, 권경애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가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야권에서도 정치 인플루언서는 VIP 대접을 받고 있다.

서민 교수는 지난 2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 대한 압박 면접에 참여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권경애 변호사, 금태섭 전 의원이 진행하는 ‘선후포럼’ 유튜브 방송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출연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조국흑서’ 멤버가 야권에선 사실상 ‘핵인싸’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만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김어준씨의 경우 세금이 투입되는 TBS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선거 때마다 편파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 서울시장을 둘러싼 ‘생태탕 논란’이 ‘뉴스공장’을 중심으로 벌어졌고, 선거 뒤 야권을 중심으로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7월 15일 이재명(왼쪽) 당시 경기지사가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일정을 마치고 함께 이동하는 모습. 뉴스1

김어준, 사실상 이재명 지지…민주당에서도 “자중해 달라”

특히 김씨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이재명은 우리 사회의 플랫폼이 될 자격이 있다. 지금부터는 당신들이 좀 도와줘야 한다. 이재명은 여기까지 혼자왔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이상민 의원마저 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와주는 게 진짜 결과로 도움이 되면 좋은데 제 생각은 (김씨가)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가능하면 자중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선언을 하고, 윤 전 총장 캠프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석열이형 TV’에 진행자로 출연했던 서민 교수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기생충 티비’에서 ‘서민 교수, 윤석열 후보의 몸 보신을 위해서 홍어와 맥주를 대접하다’라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게 논란이 돼 홍역을 치렀다. 해당 방송의 동영상 썸네일(동영상 미리보기 화면)에 ‘윤석열을 위해 홍어준표 씹다’라는 문구를 달았는데 이게 2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홍준표 의원을 지칭한 ‘홍어준표’라는 표현이 호남 비하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尹 지지’ 서민, 유튜브 ‘홍어준표’ 문구로 호남 비하 논란

서 교수는 즉각 “죽을 죄를 지었다”며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사과 글을 올렸지만 3일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당사자인 홍 의원은 전날 “그냥 기생충이나 연구하라. 정치판은 더 이상 넘보지 마라”고 한 데 이어, 이날도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그런 사람이 교수라고 하니까 내가 낯이 뜨겁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학생들 가르친다고 강단에 설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굉장히 충격적”이라며 “그동안 국민의힘이 호남에 진심을 갖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 했는데 그걸 당에 입당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보가 한방에 날리는 걸 보고 정말 해당행위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얼마 전에 5·18 민주 묘지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한 분 아니냐”며 “그런 분이 호남 비하 발언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는 건 자기 모순”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도 이날 취재진에게 “특정 지역이나 어떤 대상을 존중하지 않는 그런 발언은 그 누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기생충 티비’에 업로드된 동영상 썸네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홍준표 의원을 겨냥해 ‘홍어준표’라는 표현을 써 호남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기생충 티비’ 캡처

“책임 없는 권력”인 정치 인플루언서에 정치권이 휘둘리는 현상에 대해선 정치권의 진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청중 민주주의’ 단계를 지나 SNS를 매개로 한 ‘1인 정당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빅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부작용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에서 정당의 가치, 공화국의 가치를 고민하는 미국 민주당의 모습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정당이 인플루언서의 말만 들었다가는 결국 나중에는 반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