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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름만 바꾼 방산비리 업체…방사청은 알고도 또 낙점

중앙일보

입력

5조4000억원 규모의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actical Information Communication Network·TICN) 사업에서 이름을 바꾼 방산비리 전력 업체가 주요 장비인 발전기 납품 업체로 사실상 선정된 것으로 3일 나타났다. TICN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군 무전기를 대용량 정보 통신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통신망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TICN 4차 양산(2022~2025년)에 필요한 트레일러 탑재식 발전기세트(약 49억원 규모)를 지난달 27일 최저가 입찰에 부쳤다. 그 결과 2개 업체가 경쟁해 H사가 1순위에 올랐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적인 절차만 남겨 놓은 상태로 방사청은 조만간 이 업체와 납품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2015년부터 아날로그 방식의 군 무전기를 대용량 정보 통신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통신망으로 바꾸는 5조4000억원 규모의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정보통신 병과 신임 장교들이 TICN 수신 안테나를 설치하는 모습. 사진 육군

방위사업청은 지난 2015년부터 아날로그 방식의 군 무전기를 대용량 정보 통신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통신망으로 바꾸는 5조4000억원 규모의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정보통신 병과 신임 장교들이 TICN 수신 안테나를 설치하는 모습. 사진 육군

그런데 H사는 앞서 1~2차 양산 사업(2015~19년) 때 발전기를 납품하면서 원가를 속이는 등 부정 행위를 저지른 S사의 후신이다. H사는 도산한 S사를 인수해 회사명과 대표자를 바꿨지만, 같은 공장에서 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방사청은 지난해 8월 국회 서면 보고에서 H사를 “구(舊) S사”로 적시하는 등 사실상 같은 업체로 봤다.

S사는 1~2차 양산 당시 1100여대의 발전기세트를 수의 계약 형태로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부품인 디젤엔진의 수입가를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결국 S사의 전 부사장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방사청은 검찰 기소 내용을 바탕으로 원가를 얼마나 조작했는지 특별 점검에 나섰다. 이를 통해 방사청은 부당이득금 약 67억7000만원을 환수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부품인 회전자축에 대한 비리 여부를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S사가 국내에서 제조한 회전자축을 미국에 보낸 뒤 역수입해 수입품으로 둔갑시킨 뒤 원가를 3배 정도 부풀린 혐의로 현재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를 이용한 작전 개념도. 한화시스템

국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를 이용한 작전 개념도. 한화시스템

이런 가운데 지난 2019년 9월 S사는 3차 양산 사업(2020~2022년) 발전기 납품 업체 2곳 중 1곳으로 선정돼 군 안팎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 관련, 방사청은 국회에 “전력화 지연에 따른 군 작전 운용 제한 등으로 1~2차 양산과 마찬가지로 방사청과 직접 계약(관급)이 아닌 TICN 주계약 업체(체계를 통합하는 업체)를 통한 도급 조달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 내에서조차 “도급 계약은 방사청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비리를 저지른 것을 알고도 납품을 받는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심지어 이번 4차 양산의 경우 방사청이 직접 입찰에 나섰는데도, S사 후신인 H사가 사실상 낙찰돼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중앙일보에 “H사는 S사를 인수한 업체로 다른 업체이기 때문에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이 없다”며 “법과 규정에 따라 낙찰 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문가들은 “방사청이 입찰 참가를 제한할 수 있는 ‘부정당업자 제재’만 했어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국가계약법상 계약 조건 위반에 해당하는 것을 방사청이 직접 조사해 확인하고서도 업체에 대해 부정당업자 제재를 하지 않았다”며 “만약 S사가 부정당 업체로 처벌 받았다면 인수한 업체도 제재 적용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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