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명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3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등 자료를 전달한 장본인이다. 전날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조사한 지 하루 만에 연이은 핵심 피의자 조사다.
공수처는 김 의원이 검찰과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을 공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규명할 방침이다. 하지만 김 의원과 손 검사 모두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공수처가 이를 뒤집을 핵심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가 향후 수사의 관건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웅-조성은 녹취록 의혹 규명에 초점
김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40분께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 모습을 나타냈다. 전날 비공개 소환 조사를 받은 손 검사와 달리 김 의원은 공개 소환에 응했다. 직접 정부과천청사 고객 안내센터에서 출입증을 받고 공수처 청사까지 걸어서 출석했다.
김 의원은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이던 지난해 4월 손준성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부터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받아 당에 고발을 사주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직선거법 위반)를 받고 있다.
공수처의 이날 조사는 김 의원과 제보자 조성은씨가 지난해 4월 3일 고발장 전달 전후 통화한 녹취와 관련된 의혹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조 씨와 김 의원간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김 의원이 조 씨에게 “초안을 아마 ‘저희’가 일단 만들어서 보내드리겠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김 의원은 “고발장은 (서울)남부지검에 내랍니다, 남부 아니면 조금 위험하대요.”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식의 화법이다. 김 의원은 이후 고발장 접수 장소를 대검으로 바꾸라고 한 뒤 “그 쪽(대검)에 이야기를 해놓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공수처는 ‘저희’가 검찰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김 의원과 검찰이 고발장 작성과 전달 과정에서 공모했다는 것이다.
김웅, “고발 사주 실체 전혀 없는 것…녹취록 악마의 편집”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관련 의혹을 재차 부인했다. 그는 이날 공수처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그 내용에 대해 제가 기억 못 한다고 했다”라면서도 “녹취록을 보면 대검에 잘 얘기해두겠다고 제가 얘기를 했다. 만약 대검에서 제가 받은 거면 대검에 왜 잘 얘기해 두냐”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과 조씨의 통화 녹취록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도 공수처가 규명할 부분이다. 다만 녹취록에는 “제가 (고발하러)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말했을 뿐 고발장 작성 과정에 윤 전 총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의원도 “윤 전 총장이 지시했다거나 윤 전 총장과 협의를 했다는 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발 사주’라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약 12시간 조사를 마치고 오후 9시 30분께 공수처를 떠났다. 그는 조사 후 기자들과 만나 “결정적인 얘기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없었다”고 설명했다. 통화 녹취록 관련해서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봤는데 상당한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공수처는 지난 9월 김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나 유의미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또 전날인 2일 손 검사에 대해 13시간에 걸쳐 조사했지만, 손 검사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손 검사와 김 의원이 연락한 흔적과 같은 고발장 작성 공모 의혹 단서를 찾아야 수사는 진전이 있을 전망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손 검사에 대해 대면조사를 생략한 채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한차례 기각된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물증을 나와야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추가 신병 확보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수처는 필요하면 손 검사에 대한 추가 소환도 검토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추가 소환에 대해)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