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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北에 나무 심어 '평화·탄소중립'…시민단체 "국내 감축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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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국 프로그램 '행동과 연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국 프로그램 '행동과 연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북한과의 산림 협력으로 한반도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진행한 기조연설 중 일부다. 산림 복원으로 한반도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동시에 북한과 평화적 관계를 증진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국내 시민단체들은 문 대통령 발언에 비판적인 반응을 내놨다. "북한과의 관계를 명분으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중 국외 감축분 비중이 높은 걸 정당화하려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예상 못 한 '남북한 산림 협력' 강조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개막식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개막식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영국 글래스고 COP26 회의장에 선 문 대통령은 세 가지 약속과 한가지 제안을 했다. ▶한국의 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상향하고 ▶개발도상국의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하고 ▶세계 석탄 감축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정상들을 향해선 미래 세대의 의견을 듣는 '청년 기후 서밋'을 정례적으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발언 중 가장 이목을 끈 건 '개도국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산림·토지 이용에 관한 글래스고 정상선언'을 환영하며 개도국의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하겠다. 남북한 산림 협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COP26 한국 홍보관에서 "산림 복원이 사막화를 막을 뿐 아니라 (남북) 접경 지역의 평화를 증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개도국 산림 문제의 연장선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숲에서 대량으로 벌채한 나무를 옮기려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숲에서 대량으로 벌채한 나무를 옮기려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환경단체 "국외 감축 많다고 비판했는데…"

하지만 국내 환경단체들은 즉각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높은 국외 감축분을 희석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문 대통령의 북한 산림회복 언급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한국이 NDC 중 국외 감축분 비중(약 12%)이 높다고 받아왔던 비판을 남북 협력·개도국 산림 회복이라는 말로 덮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COP26에선 파리협정 제6조에 따라 국제 협력을 통한 탄소 상쇄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곧 논의할 예정이다. 논의 전부터 대통령이 멋대로 국외 감축을 선언해버린 꼴"이라고 꼬집었다.

기후위기비상행동도 논평을 통해 "남북 산림 협력이 기후위기 대응의 해결책으로 언급된 건 당황스럽다. 북한 땅을 국외 감축분과 산림 흡수원으로 거론하는 건 국내 감축 노력엔 집중하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김수진 기후솔루션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글래스고 선언은 산림파괴를 막자는 의의가 있지만 대규모 벌채로 인한 산림훼손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북한산림복원은 NDC나 탄소중립시나리오에서 삭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연 경기 파주시 탄현면의 남북산림협력센터. 연합뉴스

지난해 문을 연 경기 파주시 탄현면의 남북산림협력센터. 연합뉴스

남북 산림 협력은 2018년 9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사항이다. 하지만 그 후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공회전' 상태다. 지난해 6월 경기 파주시에 남북산림협력센터가 완공됐지만, 북한에 보내기 위해 심어둔 묘목은 그대로 센터 내에 남아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의 '노딜' 북·미 회담 이후 남북 간 인도적 협력 논의가 대부분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편 COP26에 참석한 정부 대표단은 북한뿐 아니라 인도 등 다른 개도국과도 산림 복원 협력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기후 변화 취약국을 돕는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NDC 국외 감축분을 채우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산림 복원 협력, 석탄 감축 노력 등을 두고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공허한 약속에 빠져 익사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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