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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인한의 퍼스펙티브

위드 코로나가 불평등한 일상 복귀여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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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속가능한 세상

손가락이 부러진 환자가 의사를 찾았다.

환자="손이 다 나으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의사="예, 물론입니다.”

환자="근데 저 원래 피아노를 못 쳤는데요?”

손이 치료된다고 원래 못 치던 피아노를 갑자기 잘 치게 되는 일은 없다. 심각한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흔히 가지는 비현실적 바램을 빗댄 이야기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져야 한다. 손이 낫는다고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는 기적이란 없다.

방역 단계가 낮아지고 코로나19를 관리하는 수준에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가 된다고 해서, 코로나 이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까지 해결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모임 규제가 풀리는 일상의 변화는 가능하겠지만, 무거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코로나19 동안 심화된 집단 간 불평등을 비롯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

백신 접종률 70% 웃돌며 일상 복귀 다가왔지만
심각해진 빈부 격차 등 사회 불평등 해소 과제로 남아
포스트 코로나 문제 대처 못하면 사회 위기 예상돼
불평등 줄이려면 국민 미래 위한 정밀한 투자 절실

복귀할 일상은 건강한가

문재인 정권 들어 급등한 서울 강남 아파트.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 들어 급등한 서울 강남 아파트. [연합뉴스]

백신 접종 완료율이 70%를 넘어서며 일상 복귀 시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단순히 접종률 수치만으로 집단면역을 확신할 수는 없어 계속 주의가 필요하며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 돌파 감염의 위험성 등 여전히 불확실성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강력한 방역정책으로 인해 위축된 경제 활동 때문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폐업이 속출하고 실직이 늘어나며 벼랑 끝까지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이어진다. 한 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90% 이상이 1년 내 폐업을 예상한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코로나보다 경제 위기가 생존을 더 위협하는 게 현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포함한 과거의 그 어느 금융 위기 때보다도 심각하게 국민 실생활에 체감되는 실물 경제 위기 상황을 계속 둘 수는 없다.

또 사회적 관계가 억압돼 온 일반 국민의 심리적 피로도도 극에 달해 사회 시스템의 재가동은 불가피하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더 미룰 수 없는 스트레스의 포화 상태다. 그러나 과연 옛날의 ‘정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뀐 생활양식인 ‘뉴노멀’로 가는 것이 전부일까?

코로나19 국민지원금 사용처임을 알리는 홍보물이 붙은 서울의 한 편의점. 코로나19 이후 빈부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국민지원금 사용처임을 알리는 홍보물이 붙은 서울의 한 편의점. 코로나19 이후 빈부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연합뉴스]

인도의 시인이자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건강하지 않은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은 건강의 척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가 복귀하려는 일상이 정상적이고 건강한지 묻게 된다. 정치적 갈등과 분쟁, 기후위기, 안정되게 살 권리를 위협하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비롯해 경쟁 과열과 과로, 사회적 불신, 가짜뉴스 등 우리 삶을 지속 가능하지 않게 만드는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다. 그러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재점검돼야 하나.

지난 2년간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정책이 방역과 함께 이뤄져야 했고 위드 코로나 시대 선언과 함께 대응돼야 할 것이다. 게다가 원래 우리 사회가 가졌던 문제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동안 심각하게 악화했다. 그중 하나가 불평등이다.

지난 2년간 저소득층 소득 17% 줄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미래 세대가 행복할 수 있는 자원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 세대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는 지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주제로 불평등 완화(목표 10)를 설정했다. 불평등 격차가 커지면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커져 사회 안정이 흔들리고 사회 와해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 세계에서 완전한 평등이 가능하진 않겠지만, 불평등을 완화해 인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유엔 SDGs의 핵심 슬로건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세상’(Leave No One Behind)이다. 단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장 불평등한 곳에 놓인 취약층까지도 고려해 정책을 실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런데 2년간 코로나19 대유행이 남긴 불평등의 결과는 너무도 크다. 대유행 초기부터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현실로 드러난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한국은행의 지난 5월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동안 최상위 5분위의 소득이 1.6% 감소한 데 비해 1분위 소득은 17.1% 감소해 가구 소득 불평등이 크게 심화했다.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개인 소유 금융자산 규모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층에 금융자산이 집중돼 있으므로 불평등 격차가 심화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의 호황으로 부유층의 부가 더욱 늘어났다. 또 첨단 IT 기업들은 코로나 시기 동안 더욱 성장한 반면, 코로나에 노출되기 쉬운 위험 직종의 필수 인력이나 직장을 잃은 노동자, 디지털 사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이전보다 고단한 삶을 살게 됐다. 모두에게 똑같이 노출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불공평하게 경험되는 대유행이었다.

불평등 커지며 젊은 층 극단 선택

불평등의 극단은 자살률과 맞닿아 있다. 인구 10만 명당 10명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던 한국의 자살률은 97년 외환위기 직후 급격히 높아져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가 됐다. 가장 높았던 2009~2011년에는 10만 명당 30명 이상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신건강과 사회 질서 변동 같은 요인도 있었지만, 자살률 급등은 불평등 지수와 대단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국가의 경제 수준이 아니라 사회 불평등이 자살과 연관돼 있다. 나라가 잘 살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등해야 행복하다. 불평등이 심화한 지금 이제부터 닥칠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심각히 우려되는 이유다.

게다가 현재의 추세도 매우 부정적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적 위기 시대에는 0에 가까울 만큼 자살률이 매우 낮다. 생존 욕구가 커지고 위기를 견뎌내는 사회적 연대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서조차 20대 자살률이 12.8% 급증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이 16.5%나 뛰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닥칠 위험의 전조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포퓰리즘 아닌 정밀한 복지 확대

위기 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복지정책을 확대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경제 위기 때 정부 재정을 긴축하고 복지를 축소하는 정책을 택해 불평등이 악화한 것이 많은 국가가 저지른 실책이었다. 이런 점에서 특별한 사례를 만든 2008년 아이슬란드의 대처를 참고할 만하다. 아이슬란드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위기 때 복지 지출을 확대해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복지 확대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은 아이슬란드에서는 고소득층 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복지 재정을 충당해 가계 부채 탕감, 실업수당과 구직 교육을 확대했다. 단기적 내수 증진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경제 주체로 독립할 수 있도록 국민의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복지정책을 현재 상황의 단기적 완화가 아닌 미래 투자로 접근해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강력한 방역 시대 동안 헌신한 보건의료 관계자와 고통을 감내해 온 모든 국민이 ‘위드 코로나’ 시대의 진입을 자축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방역에 집중한 노력은 존중하지만, 정부·정치권이 코로나19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상된 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셈이다. 손의 부상이 낫는다고 모두가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집단면역이 이뤄지고 방역체제가 끝난다고 저절로 우리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는 위기 대응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 대응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