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발음대로 쓴 영어 메뉴판, 궁금증 유발 전략 통해”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30 00:21

업데이트 2021.11.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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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30면

[SUNDAY 인터뷰] 뉴욕 한식당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 

지난 5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2021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열렸다. ‘미식업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이번 시상식에서 박정현(37) 셰프가 이끄는 뉴욕의 파인다이닝 한식 레스토랑 ‘아토믹스(Atomix)’가 43위에 올랐다.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당이 50위 안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와 레스토랑 운영을 맡고 있는 아내 박정은씨. [사진 매티 킴]

뉴욕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와 레스토랑 운영을 맡고 있는 아내 박정은씨. [사진 매티 킴]

2018년 5월 처음 문을 연 아토믹스는 6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그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8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위를 거머쥐었다. 이듬해 10월에는 미쉐린 2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경희대 호텔관광학부 조리학과를 졸업한 박 셰프는 졸업 후 런던과 멜버른의 유명 레스토랑을 거쳐 한국과 뉴욕의 파인다이닝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과 ‘정식’에서 일했다. 2012년 동갑내기 아내 박정은(37)씨와 결혼 후 2016년 맨해튼에 캐주얼 한식당 ‘아토보이’를 열었고, ‘아토믹스’는 이들의 두 번째 레스토랑이다. 참고로 ‘아토’는 순우리말로 ‘선물’이라는 뜻이다. ‘2021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에 참가했다가 뉴욕으로 돌아온 박 셰프를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미식업계의 오스카상’ 43위에 올라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 선정된 이유를 꼽는다면.
“처음 요리를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좋은 레스토랑’ 하면 프랑스 또는 미국식이 인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오리지널리티(전통과 독창성)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아토믹스 역시 한식 컨셉트와 스토리를 독창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
‘아토믹스’의 컨셉트는.
“한식의 지혜와 맛을 기반으로 다양한 테크닉과 식재료를 두루 사용하는 모던 레스토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 상차림과는 다르게 코스 요리를 제공하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한식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또 식기·메뉴카드·유니폼 등을 한국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고급스러운 한국 문화 또한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아토믹스의 코스 요리는 1인당 270달러(약 31만6000원)라는 높은 가격이지만 서너 달치 예약이 이미 잡혀 있을 만큼 인기가 좋다. 스낵 2종류,  메인 요리 7종류,  반찬 3종류, 밥 2종류, 디저트 2종류 등 총 16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이 메뉴는 3개월에 한 번씩 바뀐다. 특히 메인 요리와 함께 ‘밥’ ‘반찬’을 곁들여 내는 구성은 외국 레스토랑에선 볼 수 없는 아토믹스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가자미식혜, 여러 종류의 무, 고추장 샐러드 등을 곁들여 내는데 이는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먹거나 비벼 먹는 다양한 맛의 경험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각자의 기호대로 여러 가지 맛을 조합해서 먹는 ‘반찬 문화’는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한식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나리(Minari), 쑥(Ssuk) 등 한글 발음대로 식재료를 소개한 메뉴판. [사진 아토믹스]

미나리(Minari), 쑥(Ssuk) 등 한글 발음대로 식재료를 소개한 메뉴판. [사진 아토믹스]

한글 발음대로 적은 메뉴판이 유명하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에 가면 대부분 아시안 식재료를 일본 발음으로 적거나 영어로 번역해 적는다. 그게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간장(청장·중장·진장)·된장·다시마·장아찌·두부·초피·송이버섯·표고버섯·조청·감태 등의 식재료와 찜·조림·나물·반찬·죽 등의 조리법 명칭을 알파벳으로 적되 한글 발음 그대로 적고 있다. 미나리(Minari), 쑥(Ssuk) 이런 식이다. 외국인 손님들이 ‘이게 뭔가’ 궁금해 할 때 자연스레 한식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게 우리 방식이다.”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뉴욕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의 요리들. 메인 요리에 ‘반찬’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만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따뜻하면서도 독창적이다.

아토믹스 팀이 메뉴판에 쏟는 정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면에는 단청 등의 한국 전통문양이 예쁘게 들어가 있다. 또 메뉴마다 박 셰프의 개인적인 경험 등 음식에 관한 짧은 설명과 식기를 만든 아티스트 소개까지 한국 문화 정보가 촘촘하게 적혀 있다.

전 세계에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뉴욕과 유럽에서 느끼는 K푸드는 어떤가.
“뉴욕에 한식당이 많이 오픈했고 위치도 이스트빌리지, 미드타운, 트라이베카, 브룩클린 등 다양해졌다. 한국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마트 풍경도 달라졌다. 처음 뉴욕에 온 10년 전만 해도 주로 한국인이 이용했는데 요즘은 외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올해는 특히 영화 ‘미나리’ 덕분에 뉴욕의 큰 마켓들에서 미나리가 아주 인기라고 한다.(웃음) 뉴저지, 오레곤 등에서 우리 농산물을 키우는 한국인 농부들도 많아졌다. K팝-K무비-K푸드가 유기적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공동체 식문화 진화에 힘 보태고 싶어

ㄷ자 형태의 바로만 구성된 실내. [사진 아토믹스]

ㄷ자 형태의 바로만 구성된 실내. [사진 아토믹스]

서양식 코스 상차림 때문에 ‘모던 한식은 진짜 한식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많다.
“음식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중요한 만큼 모든 한국인에게는 각자의 한식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어머니가 해주신 밥, 누군가에겐 떡볶이가 한식을 대표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토믹스의 상차림은 한식으로 안 느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한식 글로벌화’에 아직 정답은 없다. 전통 그대로를 유지하기보다, 뉴욕에 사는 외국인 또는 뉴욕에 여행 온 여러 나라 사람에게 한식과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셰프들과 협업 이벤트도 많이 갖는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나 또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모든 셰프들은 색다른 식재료에 관심이 많다. 특히 영어로 일일이 번역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한국의 나물류와 뿌리채소들을 아주 좋아한다. 발효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나물을 예로 들면, 한국에선 생나물이든 삶은 나물이든 간장·된장 등에 가볍게 무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보기엔 아주 가벼워 보이지만 발효 음식 특유의 깊이 있는 맛이 일품이다. 보통 양식에선 감칠맛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스톡(고기·생선·뼈·채소 등을 우려낸 국물)을 끓이고 또 그걸 졸여서 소스를 만든다. 그런데 한국에는 깊은 맛을 내는 소스가 집집마다 항상 구비돼 있다니까 엄청 신기해한다.”(웃음)
한식 셰프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이번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위를 수상한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는 이미 여러 차례 이 리스트에 올랐다. 그래서 르네 레드제피 셰프의 ‘이 리스트에 선정되면서 덴마크와 노르딕 음식에 큰 의미와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 진지하게 들리더라. 식문화가 주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은 그만큼 엄청나다. 더 나은 음식 문화를 위해 작은 부분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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