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애니에 올인 20년 PIXAR(픽사) 애니의 미래도 책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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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카 (2006년)

그 누가 알았으랴.

자신이 세운 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1986년 1000만 달러를 주고 조지 루커스로부터 사들인 아담한 컴퓨터 그래픽 회사가 세계 컴퓨터 애니메이션계의 지존이 될 줄을.

'픽사(Pixar)'라는 이름이 약간 생소하다면 '토이 스토리'나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회사라고 소개하면 금세 느낌이 올 터.

직원 850여 명의 이 회사는 만드는 족족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며 세계 애니메이션사를 새로 써 가고 있다. 5월 디즈니와 합병을 완료한 후 픽사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20년간 "픽사보다 새로운 건 픽사뿐"이라고 외쳐온 이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에머리빌의 픽사 스튜디오를 찾은 것은 하늘색 좋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픽사 스튜디오 내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확 트인 로비가 마치 실내 농구장 같다. 허공을 가르는 아치형 구름다리도 여느 사무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 분명 근무시간일 텐데 사내 헬스장에는 아령을 든 사람들이 있고, 마사지 테라피실에서는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직원들이 즐거워야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저희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팔아 살아가는 회사거든요."

픽사 유니버시티 학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넨 교육담당 랜디 넬슨은 "직원들은 일주일에 4시간을 사내 대학에서 공부해야 한다"며 "요리를 하건, 조각을 만들건, 영화를 찍건 그건 자유"라고 말했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때로 일과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톡톡 튀는 인재들이 모인다는 이곳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직원들 간의 화합. "애니메이션 제작은 끈질긴 참을성이 필요한 협동 작업입니다. 창의력이 있고 재주가 좋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융화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최신작 '카'에서 메이터라는 자동차의 컬러 처리를 맡은 한국인 김형균(39)씨는 픽사의 강점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사람이 없어요. 대신 가장 멋진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항상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 엄청나게 고민하죠. 모두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직원들의 강력한 동기 부여를 이끌어내는 것 중 하나가 단편 제작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회사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단편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하고 자체 제작한 영화 속에 활용되기도 한다. 98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제리의 게임'속 주인공을 99년 '토이 스토리2'에서 활용하는 식이다.

올해 개봉된 '카'의 경우 최근 국내에 출시된 DVD를 보면 '원맨밴드'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어린 관객의 동전 한 닢을 얻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광대의 경연이 배꼽을 잡게 하는 작품이다.

픽사 역시 단편으로 시작했다. 현재 픽사&월트디즈니 창작담당 총괄사장이자 픽사 스튜디오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존 라세터(49)감독은 86년 '룩소 주니어'라는 작품을 통해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전기 스탠드가 마치 살아 있는 듯 통통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모습을 생생한 영상으로 만들어낸 이 작품은 그전까지 기하학적 영상미 위주였던 컴퓨터 그래픽에 비로소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격찬을 들었다. 테크놀로지에 상상력을 결합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영상'을 추구하는 픽사의 정신은 이미 출발부터 잉태해 있었던 셈이다.

애플 컴퓨터와 MP3 및 동영상 기기인 아이팟의 신화를 일궈낸 스티브 잡스가 이번 합병으로 디즈니의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픽사 역시 새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준비가 한창이다. 픽사의 차기작은 과연 어떤 작품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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