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때까지 당한걸 모른다, 21명 쓰러뜨린 '조용한 킬러'

중앙일보

입력 2021.10.29 05:00

지난 23일 서울 금천구 신축 건물 공사 현상에서 21명의 사상자가 나오게 한 물질은 ‘이산화탄소’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체지만, 무색무취로 숨이 막힐 때까지 사람들이 가스 누출을 눈치채지 못하게 해 ‘조용한 살인마’로 불린다. 사고 현장에서는 이산화탄소 소화 약제가 누출돼 3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반복되는 이산화탄소 사고

소방대원들이 2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 진압작전을 준비히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뉴스1]

소방대원들이 2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 진압작전을 준비히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뉴스1]

지난 2018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도 같은 원인으로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최근 10년간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인명사고는 총 7건이었지만, 68명의 사상자(사망 6명, 부상 62명)를 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7일 소방청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의 내용이다.

이산화탄소는 가스 자체에 독성은 거의 없으나 다량이 존재할 경우 사람의 호흡 속도를 증가시킨다. 화재 가스에 혼합된 유해가스의 혼입이 증가할 경우 위험을 더욱 가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산화탄소의) 8%가 유출되면 호흡이 곤란해지고 20% 이상 유출되면 즉시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방 관계자는 “몇 모금 마시면 바로 질식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저렴해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대책은

이산화탄소의 위험성은 계속 제기됐지만,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사용하는 곳은 전국 1만여 곳에 이른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1만 1317곳의 건물에 이 설비가 설치돼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소화 약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산화탄소를 소화 약제로 설비하는 것을 규제할 수는 없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교수는 “약제에 색과 냄새를 첨가해 가스 유출 시에 사람들이 빨리 알아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할로겐 화합물 및 불활성기체 소화 약제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이 약제의 가격은 이산화탄소보다 두 배 이상 비싸지만, 인체에 위험을 끼칠 확률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공 교수는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경제 논리를 뛰어넘어야 비로소 안전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화 약제 컨트롤 스위치 크기·위치 점검해야

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가산메트로지식산업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가산메트로지식산업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소화 약제 변경과 함께 작동 스위치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 26일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등이 사고 현장 정밀 감식을 진행한 결과, 경찰은 수동 조작에 의한 유출로 가결론을 내렸다. 사망자 세 명 중 누가 스위치를 작동했는지, 어떤 이유로 스위치를 조작했는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와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 수동 작동 스위치와 방출 지연 스위치는 작업실 밖에 있고, 스위치의 크기도 성인 남성 손톱 정도의 크기로 작은 편이라고 한다. 약제가 유출될 경우 경보가 울리고 이로부터 약 1분 뒤에 가스가 방출된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수동 정지 스위치의 크기와 위치 등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가스가 유출된 뒤에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작업장 안에 따로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수동 조작을 한 사람이 사망함에 따라 관계자 등을 조사해 조작 원인과 경위에 대해 수사하여 사고 경위를 규명할 것”이라며 “안전수칙 준수 여부, 안전교육 이행 여부, 대피 시 조치의 적절성 등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합동 감식의 최종 결과는 4주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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