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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도 반대하는 종전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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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6월 1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동의 및 종전선언 평화협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6월 1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동의 및 종전선언 평화협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종전선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처음 나왔다. 그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한·미)는 각각의 (종전선언)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시기·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은 종전선언을 집요하게 요구해 온 한국 정부에 ‘협력한다’는 수준의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그런데 설리번 보좌관의 이번 입장은 사뭇 다르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일치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이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설리번 “순서·시기·조건 한국과 다른 관점”

한·미 동맹 훼손하는 종전선언에 신중해야

정부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4년 반 동안 종전선언을 추진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하면서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2일 워싱턴을 방문해 설리번 보좌관에게 우리 정부의 종전선언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6일 워싱턴을 방문, “미 정부 인사들과 종전선언에 관한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 외교부 장관에게 종전선언에 대한 협조를 구한다. 그러나 미국이 아직은 종전선언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정부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은 매우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 대입하면 뜬구름에 가깝다. 정부는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 조치의 입구와 같고, 여차하면 선언을 취소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번 합의한 종전선언을 되돌릴 수 있을까. 더구나 북한은 핵무장을 강화하며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다지만 북한의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북한은 한발 더 나아가 종전선언을 하려면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북 적대정책 폐기는 한·미 연합훈련 폐지는 물론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전략자산을 모두 거둬들이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한·미 동맹 와해나 다름없다. 종전선언은 유엔군사령부의 존속에도 영향을 준다. 유엔사는 유사시 우리를 지원할 유엔군 증원 전력을 제공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정부는 이런 안보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무시한 채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이 바뀌지 않는 한 종전선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과 한반도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종전선언을 정권 말기에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종전선언이 아니라 강력한 국방력으로 북한 도발을 억지하고, 차기 정부에 안정된 안보를 넘겨 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임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