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넷플릭스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독식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독식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사진 넷플릭스]

인도네시아에서는 공무원 시험장에 ‘오징어 게임’ 진행요원 분장을 한 시험 감독관이 등장했다. 스페인 장례업자들은 극 중 분홍색 리본 장식 관을 실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의 돌풍에 비하면 정작 우리나라는 조용한 느낌이 들 정도다. OTT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25일 넷플릭스 TV쇼 톱10 안에 ‘오징어 게임’(1위) ‘마이 네임’ ‘갯마을 차차차’까지 한국드라마가 3편 올라 있다. 22일에는 ‘연모’까지 4편이 10위권에 들기도 했다.
해외 언론들도 ‘오징어 게임’ 현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제작비 대비 41배 투자 효율, 1조원 가치 창출로 넷플릭스 사상 최고 가성비의 콘텐트다. BTS와 K팝, ‘기생충’과 ‘미나리’를 잇는 한류의 저력을 웅변한다. 서서히 견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J컬처 파워가 예전 같지 않은 일본에선 “일본 문화가 원조”라는 식의 흠집 내기가 시작됐다. 콧대 높은 유럽에서는 한류 파워를 인정하면서도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관제 문화상품이라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있다. 역대 정부들이 ‘문화입국’ 기치 아래 ‘서포터’ 역할을 자임한 것은 맞지만 정작 산업의 성장은 철저한 민간 주도였는데도 말이다.

넷플릭스 날개 단 K 드라마 신드롬 #국내 업자 역차별 등 문제점도 노출 #지상파 중심 현 방송법 재정비 시급

 국내에선 ‘오징어 게임’의 대박에도 수익은 고스란히 넷플릭스 몫이라는 데 비판과 우려가 크다. '노(No) 규제'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독식하는 구조에 유능한 창작자들이 줄줄이 넷플릭스 행이니 자칫 제작 하청기지가 되는 것 아니냐 비관론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인터넷 트래픽 비용)를 내지 않으면서 국내 업자와의 역차별론도 꾸준하다. 그간 글로벌 OTT에 대한 ‘무규제’ 패러다임에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모인다.
 넷플릭스는 존재 자체에 역설과 이중성이 있다. 같은 국내 사업자라도 제작자에게는 기회이고, 플랫폼들에는 위기다. 규제를 강화하면 그만큼 한국 시장에 투자할까 우려도 있다. 저작권 문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갑’ 지상파 방송이 독식해 ‘을’ 제작사들이 분통을 터뜨렸었다. 조영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최근 방송학회 세미나에서 "넷플릭스가 이익을 보고 제작사가 종속화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데 과거 지상파도 완전히 똑같았다"고 꼬집었다. 결국 우리 제작사들이 영향력을 키워 넷플릭스와의 (저작권) 협상력을 강화하는 게 정답이란 얘기다. 망 사용료만 해도 넷플릭스는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지만, 다음 달 국내에 진출하는 디즈니플러스ㆍ애플TV플러스는 간접 부담 의사를 밝혔다. 이들도 개국 라인업에 K콘텐트를 포진시켰다.

 김병희 서원대 교수는 한 글에서 가뜩이나 유튜브 등이 국내 광고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가운데 향후 넷플릭스가 일부라도 구독 대신 광고모델로 전환할 경우 광고시장의 변화를 걱정했다. “글로벌 OTT 사업자에 대해 ‘동일 기능(서비스) 동일 규제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동일 규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내 광고비의 해외 유출은 날로 심화할 것”이라고 그는 짚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이런 국내 사업자들의 불만과 위기감, 국내 생태계에 대한 위험 요소를 잘 정비해내는 정부의 역할이다. 글로벌 OTT의 침공이 예고된 지 수년이다. ‘동일 콘텐트 동일 규제’ ‘최소 규제 최다 진흥’ 원칙에 따라 공정한 생태계를 만드는 법 체제 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최근 통신학회 세미나에서 “현행 방송법은 2000년 제정 당시 지상파 중심에 머물러 있고, 사업자 분류에 따른 주체별 책무도 불분명하다. 포괄적인 시청각미디어법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은 방송법ㆍIPTV특별법ㆍ전기통신사업법(OTT)이 따로고, 관할 부처도 과기부ㆍ방통위ㆍ문체부가 따로다. 사업자들은 부처별 주도권 다툼으로 OTT 대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