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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진짜 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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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차세현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독일에서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한창이다. 16년 만에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녹색당과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치열한 연정 회담을 벌이고 있다. 세 당이 연정 구성에 성공하면 독일은 전후 이어진 양당 연정 시대의 막을 내리고 최초로 3당 연정 시대를 열게 된다.

독일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퇴임을 앞두고도 지지율 70%를 넘는 ‘무티(Mutti·엄마) 리더십’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여자 총리처럼 할 수 있다(Er Kann Kanzlerin)’는 구호를 내걸 정도로 집권에 절박했던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를 선택했다. 상대당 출신 총리인 메르켈만큼 잘할 테니 사민당을 찍어달라니, 놀라운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총선 끝난 독일,연정협상 한창
한국 정치는 승자 독식 구조
권력 나누는 ‘진짜 깐부’ 맺기
진영 싸움 대선 승패 가를 수도

독일 연정 얘기를 꺼낸 건 권력을 나누는 정치 시스템과 문화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지금 대선을 앞둔 한국 상황을 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6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6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갤럽이 지난주 실시한 가상 4자 구도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34%, 윤석열 31%, 안철수 9%, 심상정 7%의 지지를 받았다. 국민의힘 후보로 홍준표 후보를 넣으면 이재명 33%, 홍준표 30%, 안철수 10%, 심상정 8%였다. 함께 조사한 후보별 비호감도에선 안철수 72%, 윤석열과 심상정 62%, 이재명 60%, 홍준표 59%였다. 요약하면 응답자들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짜증 나는’ 후보들 가운데 그나마 덜 비호감인 후보를 찾아 지지 의사를 밝혔고 그 결과가 이렇다는 것이다.

다원화된 자유민주사회 한국에서 특정 후보에게 지지도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건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비호감 후보가 과반에 턱없이 모자라는 국민 지지를 받아 집권한 뒤 권력을 100% 독점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막을 장치가 한국 정치엔 없다. 친이·친박, 친박·비박, 친문·비문으로 2008년 이후 나라와 국민은 2분의 1, 4분의 1, 8분의 1로 쪼개졌는데 이제 16분의 1이 될 차례란 말인가.

아니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움직임이 있긴 하다. 바로 후보 단일화다. 최근 사례는 문재인-안철수(201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이고, 그 이전엔 DJP 연합(김대중+김종필, 1997년)이 있었다. 대선 승리에 목을 맨 후보들은 내 것과 네 것이 어딨냐며 서로 ‘깐부’를 맺자고 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깐부가 되더라도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은 만기친람했고 깐부는 곧 원수가 됐다. 대선 승리에만 급급한 ‘가짜 깐부’였기 때문이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야권은 상대적으로 높은 국민의 정권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는 싸움을 하고 있다. 유력 주자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 홍준표 후보는 20·30세대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같은 갤럽 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자 중 53%만이 홍 후보, 홍 후보 지지자의 55%만이 윤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11월 5일 후보가 결정되면 1+1이 2가 되기는커녕 1.5밖에 안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곧 출마를 선언할 태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 1위 돌풍을 일으켰던 피트 부티지지 후보(39)를 교통부 장관에 임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막기 위해 인구 10만의 소도시 시장이자 성 소수자인 부티지지 지지자의 표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권력 나누기를 택했고 취임 후 약속을 지켰다. 이런 노력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클린턴 힐러리 대선 후보 선출 후 일어났던 것과 같은 민주당 내 분열을 막았고, 결국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상 최대 표를 받은 패자가 됐다.

지금 야권 대선 후보로 나선 인물의 면면을 보자.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국무총리나 기재부, 교육부, 법무부, 국방부, 행안부, 과기정통부 장관감이 눈에 들어오지 않나. 그들은 대선에 뛰어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실력을 쌓았고 경선 과정에서 도덕성 검증대에 이미 올랐다. 경선에 승리한 후보의 캠프 인사들보다 낫지 않은가.

이제 4명의 국민의힘 후보들이 함께 집권하면 5년 동안 다른 후보들과 권력을 나누겠다는 약속을 하고 최종 후보가 결정되면 국민에게 야당의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공개하면 어떨까. 그게 원팀이고,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할 ‘진짜 깐부’ 아닐까. 권력과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