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서 독극물 안 나왔는데…"물맛 이상해" 생수병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5:00

업데이트 2021.10.23 06:37

지난 21일 오후 4시쯤 '생수병'사건이 벌어진 서초구 양재동의 업체 모습. 직원들은 모두 재택근무중이고 문은 굳게 닫혀있다. 김지혜기자

지난 21일 오후 4시쯤 '생수병'사건이 벌어진 서초구 양재동의 업체 모습. 직원들은 모두 재택근무중이고 문은 굳게 닫혀있다. 김지혜기자

지난 21일 오후 4시쯤 서초구 양재동의 한 회사 앞. ‘생수병 독극물 사건’이 일어난 이곳은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같은 부서에서 용의자와 피해직원 3명이 함께 근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문을 닫고 직원들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이 건물 관계자는 “지금 업체에서는 새벽에 청소하는 사람도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라며 “용의자로 특정되고 있는 직원은 평소에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한 부서 3명이 병원행…무단결근 직원 집엔 독극물

지난 18일 이 회사에서는 직원 2명이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시고 쓰러졌다. 2주 전엔 회사에서 탄산음료를 마신 또 다른 직원이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 사건 발생 다음 날(19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30대 남성 직원 A씨는 무단결근을 했다. 회사 직원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가던 경찰은 수상한 낌새를 쫓아 관악구에 위치한 A씨의 자택을 찾았다. 그리고는 극단적 선택을 한 A씨를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부검결과 A씨의 사인은 약물중독이었다. A씨의 집엔 아지드화나트륨, 메탄올과 같은 독성 물질이 다수 발견됐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아지드화나트륨’을 검색한 정황도 드러났다.

하지만 생수병 사건은 다시 미궁 속에 빠졌다. 생수병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으면서다. 다만 현재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인 직원의 혈액에서 독극물이 검출됐다. 22일 국과수가 내놓은 소견에 따르면 이 독성분은 아지드화나트륨이었다. 2주 전 또 다른 직원이 마신 탄산음료에서 나온 것과 A씨의 집에서 발견된 독극물이 동일한 성분으로 밝혀졌다. 아지드화나트륨은 주로 농업용 살충제나 제초제의 원료로 사용된다. 물에 잘 녹고 색을 띠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마시면 구토와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물맛 이상하다"는데 왜 독극물 검출 안 됐나

서울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서울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3명의 직원이 마신 330㎖ 생수와 탄산음료 모두 회사에 비치되어있던 음료였다. 사건 당일 물을 마신 직원은 “물맛이 이상하다”며 주변인들에게 말한 뒤 경련을 일으키고 구토를 하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독극물 성분이 생수병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생수를 마신 직원 2명이 물을 마시기 전 독성이 든 다른 음식물을 섭취했을 가능성도 커졌다. 약학 관계자는 “ 두 남녀 직원이 회사에 비치된 다른 음식을 먹고 난 뒤 이상 작용으로 ‘물맛이 이상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무실 내부엔 폐쇄회로(CC)TV가 없어 물을 마시기 전 어떤 음식을 섭취했는지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경찰관계자는 “두 직원이 물을 마시기 전 또 다른 음식물을 섭취했는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2명의 직원이 생수병에 담긴 물을 마신 뒤 생수병이 뒤바뀌거나 버려졌을 가능성 등이다. 사건 발생에서 신고까지 7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 흘러 독성 성분이 희석돼 검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신고가 7시간 만에 이뤄졌기 때문에 현장보존이 되어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범행동기는 사내갈등?…직장동료 “따돌림은 없었다”

한편 직장 동료들은 경찰 조사에서 직장 내 따돌림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내 갈등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2주 전 음료수를 마시고 병원에 간 직원과 A씨가 1년가량 사택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면서다. 경찰관계자는 “범행 정황이 있는 상황에서 A씨를 입건했기 때문에 수사와 부검 결과 등을 통해 사건 경위를 면밀히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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