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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일깨우는 ‘오징어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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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중국 관련 뉴스는 대체로 넷플릭스도 못 보는 중국인들의 불법 시청이나 저작권 도용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현지에서 받는 또 다른 인상이 있다.

일단 중국에서도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상당하다. 체감적으로는 타오바오(淘寶) 같은 최대 인터넷 쇼핑몰에 우산 모양이 찍힌 ‘달고나’가 절찬리에 판매 중이고, 15초 동영상 사이트 더우인(중국식 틱톡)에는 녹색 트레이닝복의 드라마 패러디물이 메인 화면에 올라온다. 웨이보(중국식 트위터) 검색어 누적 조회수 20억 회, ‘텅쉰’(騰訊)에선 국내외 영상을 합해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불법 유통이라는데 당국의 제재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자본주의 폐해를 다뤘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보는지도 모른다.

13일 중국 주류 매체 ‘관찰자망’이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에피소드’라는 기사를 실었다. 유심히 봐야 할 건 댓글이다. 검열이 없는 탓인지 속내가 드러나는 글이 제법 올라온다.

중국 상하이 인민광장 인근에 위치한 한국식 설탕 과자 ‘달고나’ 가게. [연합뉴스]

중국 상하이 인민광장 인근에 위치한 한국식 설탕 과자 ‘달고나’ 가게. [연합뉴스]

“(…) 많은 네티즌이 오징어 게임과 넷플릭스를 멸시한다 해도 우리나라 영화와 TV드라마가 글로벌 히트를 못 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현실 사회를 바꾸는 데는 소용이 없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데는 실로 심오하다” 등등, 상당수가 한국 콘텐트의 경쟁력과 중국 영화·드라마의 경쟁력 부족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는 영화 ‘장진호’의 흥행에 오버랩된다. 당 선전부와 국가전파영화총국의 지원 아래 제작된 ‘장진호’는 중국 박스오피스 40억 위안(7200억원)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올랐지만 해외에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외국 개봉이 없는 것은 물론 ‘애국주의로 물든 중국’이라며 비웃음만 샀다.

분위기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도 심심찮게 확인된다. “단순하지만 재밌고, 머리를 뜨겁게 한다. 우리 대중문화가 이런 점을 연구하지 않으면 세계 문화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비판적인 생각을 노출하기 어려운 중국에서 ‘오징어 게임’을 계기로 중국 제작물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불법 영상 유통에 대한 문제 인식도 느껴진다. 지난 11일 인터뷰에 응한 한 베이징 시민 궈(郭·30)모씨는 ‘오징어 게임’을 우리나라 네이버 격인 “바이두(百度)에서 검색해서 찾아봤다”면서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중국 내 저작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털어놓았다. ‘오징어 게임’이 중국을 각성시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