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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바이든의 미·중 무역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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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시대에 미·중 무역전쟁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문제를 지켜보는 전 세계 전문가의 눈과 귀는 지난주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로 향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중 무역 정책을 논한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20분 연설과 40분간 이어진 질의응답이 끝난 뒤 반응은 ‘신중했다’와 ‘실망했다’가 뒤섞였다. 중국과의 첫 ‘대화’(‘협상’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를 앞둔 타이 대표가 전략을 노출하지 않고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말을 아꼈다는 평이 전자다.

후자는 미국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데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협상한 1단계 무역합의, 즉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농산물 등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구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도록 압박하겠다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끌고 있는 캐서린 타이 미 무역 대표부(USTR)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끌고 있는 캐서린 타이 미 무역 대표부(USTR)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타이 대표는 시장 접근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등 중국 경제의 광범위한 구조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2단계’ 협상을 당장 시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미 고위당국자도 확인했다. “중국이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개혁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자연히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부과 중인 고율 관세도 철회하기 어려워졌다. 중국의 비시장적 질서에 철퇴를 가하는 협상을 할 때 지렛대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먼저 거둬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바이든 정부 내 대중 무역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트럼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타이 대표가 “동맹과, 같은 생각을 가진 파트너”와 협력해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한 부분이다.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객석에서 질문이 나왔다. “1단계 합의는 본질적으로 양자 간 합의다. 어떻게 동맹과 협업할 수 있나?” 질문자는 예를 들었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늘리기 위해 호주와 보리 구매 계약을 취소했는데, 1단계 합의 이행에만 초점을 맞추고 2단계로 진행하지 않으면 동맹과 협업할 여지가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타이 대표는 1단계 무역합의는 미·중간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답했다.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무역정책에 해법이 없는 게 아니라, 일각의 기대처럼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