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가을 산책, 세계유산이 된 갈대밭을 걷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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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다자우길 ⑦ 순천만 갈대길

물 빠진 시각, 전남 순천의 와온 갯벌. 순천만 갈대밭의 진짜 주인은 갯벌이다. 갯벌의 힘으로 갈대가 자랄 수 있었고, 갯벌의 힘으로 순천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다. 바닷물 들락거리는 물골과 사람 드나드는 노둣길이 나란하다.

물 빠진 시각, 전남 순천의 와온 갯벌. 순천만 갈대밭의 진짜 주인은 갯벌이다. 갯벌의 힘으로 갈대가 자랄 수 있었고, 갯벌의 힘으로 순천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다. 바닷물 들락거리는 물골과 사람 드나드는 노둣길이 나란하다.

누런 갈대 서걱거리는 갈대밭만큼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은 장소는 많지 않다. 마침 순천만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이 가을날 ‘순천만 갈대밭’을 걷는 것은, 국내 생태관광의 모범 사례를 체험하는 일이자 유네스코도 인정한 갯벌의 가치를 경험하는 일이다. 순천만 갈대길에서는 절대 속도를 내선 안 된다. 이왕이면 느릿느릿, 맛있는 것 아껴 먹듯이 걸으시라 권한다.

순천만을 걷기 전에 알아야 할 것

순천만 경관농업단지의 논. 순천시가 매해 흑미를 심어 흑두루미와 글씨를 새겨 넣는다.

순천만 경관농업단지의 논. 순천시가 매해 흑미를 심어 흑두루미와 글씨를 새겨 넣는다.

순천만은 이례적인 자연유산이다. 인간이 개입해 자연생태계의 가치를 높인 사례여서다. 1990년대엔 개발 논리가 우세했다. 순천시를 가로지르는 동천이 범람하자 순천만 갯벌의 모래를 퍼내 동천을 정비하려고 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2003년 순천만 갯벌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 계획이 무산됐다.

2006년 순천만은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고, 이듬해 순천만 일대 7.7㎢가 생태계 보존지구로 지정됐다. 대대포구 주변 식당이 보전지구 외곽으로 옮겨졌고, 샛길 통행을 막기 위해 갈대밭 탐방로가 놓였다. 2009년엔 철새를 위한 조처가 실시됐다. 순천만 일대 전봇대 282대가 뽑혔고, 0.59㎢ 면적의 논을 경관농업단지로 조성했다. 경관농업 논에서 나는 쌀은 대부분 겨울 철새 먹이로 쓰인다. 하여 일절 농약을 안 쓴다.

순천만 갈대밭.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가 운치 있다.

순천만 갈대밭.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가 운치 있다.

지난 10여년간 달라진 건 갈대밭 풍경만이 아니다. 2006년 순천만 방문객은 70만 명 수준이었다. 2019년 1000만 명에 육박했으니, 13년 만에 방문객이 약 14배 폭증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VU등급)으로 지정한 겨울 철새 흑두루미도 이 사이 크게 늘었다. 순천만 보전사업이 본격화한 2008년 순천만에서 발견된 흑두루미는 344마리였다. 지난겨울엔 3107마리가 찾아왔다.

9월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갈대밭. 아직은 초록색이 짙다. 탐방로가 오리 모양인 줄 처음 알았다.

9월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갈대밭. 아직은 초록색이 짙다. 탐방로가 오리 모양인 줄 처음 알았다.

2013년 순천시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 것도 순천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박람회가 열린 순천만 국가정원이, 팽창하는 순천시와 순천만 습지 중간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순천만 갯벌은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순천시는 2023년 두 번째 국제정원박람회 개최를 선언했다. 허석 순천시장은 “순천시 전체를 정원으로 꾸밀 작정”이라고 말했다.

순천만을 걷는 방법

순천만 선상투어용 배.

순천만 선상투어용 배.

순천만 갈대길은 13.7㎞ 길이다. 문체부가 조성한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의 61코스와 겹친다. 순천만 갈대길은 순천시가 조성한 ‘남도 삼백 리 길’의 구간 이름이다. 와온 해변에서 시작해 용산전망대를 올랐다가 순천만 습지를 관통한 뒤 제방을 따라 걸어 화포까지 가면 끝난다.

갈대밭에서 용산전망대에 가려면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갈대밭에서 용산전망대에 가려면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순천만 갈대길은 걷는 방법이 따로 있다. 오후 시간을 골라 순천만 습지에 입장하자. 우선 순천만역사관을 둘러보고 순천만 어귀까지 왕복 6㎞를 운행하는 배를 타자. 강나루(62) 순천만 명예습지안내인에 따르면 운이 좋으면 수달도 볼 수 있다. 이젠 정말로 걸을 시간이다. 바람이 불어도 좋고, 비가 내려도 좋다.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 만큼 운치 있는 가을 소리도 없다. 갈대밭 구간은 3.2㎞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황선미 주무관은 “순천만을 걸을 땐 보폭을 줄이고 자세를 낮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9월 30일 용산전망대에 올랐을 땐, 갈대밭에 가을 색이 덜 들었었다. 올해 경관농업 논에 흑미 벼로 새긴 글자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순천’이었다. 지난해엔 ‘힘내라 대한민국’을 새겨 화제가 됐었다. 일몰은 용산전망대보다 와온 해변에서 맞는 게 낫다. 너른 갯벌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놀이 장관이다. 역방향으로 걸은 이유가 와온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허다한 시인이 와온 해변의 황금빛 석양을 노래했다.

칠게빵

칠게빵

용산전망대에서 와온 해변까지 약 5㎞ 구간은 갯벌을 따라 이어진다. 농게·칠게·짱뚱어 등 온갖 갯것이 꼼지락거린다. 와온 갯벌은 칠면초 군락지로 유명한데, 올해는 칠면초가 예년보다 적어 아쉬웠다. 가을이면 붉게 변한 칠면초가 장관을 이뤘었다. 순천만 습지에서 화포까지 약 6㎞ 구간은 이튿날 아무 때나 걷자. 제방 따라 길이 이어진다. 마침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길 정보
순천만습지

순천만습지

순천만 갈대길은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용산전망대 가는 길에 오르막이 있을 뿐 나머지 코스는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좋다. 순천만 습지는 입장료가 있다. 어른 8000원. 순천만 선상투어도 돈을 내야 한다. 어른 7000원. 순천만습지 쉼터에서 파는 칠게빵은 순천을 대표하는 주전부리다. 생긴 것도 칠게 모양이지만, 칠게 가루를 쌀가루에 넣어 반죽했다. 5개 한 봉지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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