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신원호 PD “이런 착한 판타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10.09 09:11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PD. [사진 CJ ENM]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PD. [사진 CJ ENM]

“할 얘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하고 싶은 것 반도 못했다”

시즌2를 마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tvN)의 신원호 PD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종영 소감을 밝혔다. “환자ㆍ보호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금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시즌3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여운을 남겼다.

지난해 시즌1을 최고시청률 14.142%로 마무리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올 6월 시즌2를 시작해 지난달 16일 시즌 최고 시청률인 14.080%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착하고 재주많은 엘리트 의사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세상’ 느낌도 있었다. 서울대 의대 99학번 5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이렇게 ‘초엘리트’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엘리트에 대한 선망이라기보다 전문직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세상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판타지.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 좋은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걸 판타지라고 불러도 좋다. 그저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받는 기분이었으면 했다. 사실 공유 같은 도깨비도 없고 박보검 같은 남자친구도 없다. 어차피 모든 드라마가 판타지라면 ‘좋은 사람들의 세상’은 그나마 더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 아닐까. 웬만한 설정으로는 일말의 화제성도 얻지 못하는 시대이다 보니 드라마는 점점 독해지고 있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쇼킹하고 보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의 틈바구니 속에 이런 착한 판타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마친 뒤 '구구즈' 5인방과 기념 촬영을 하는 신원호 PD. [사진 CJ ENM]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마친 뒤 '구구즈' 5인방과 기념 촬영을 하는 신원호 PD. [사진 CJ ENM]

-악역 없는 드라마였다. 갈등 구조를 만들고 풀어가는 재미가 아무래도 덜해서 “‘전원일기’ 보는 거 같다”는 평마저 있었다.
“이우정 작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 불편한 악역이나 갈등들은 보기 어렵더라. 사실 콘텐트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장 기본요소가 갈등이기 때문에, 그 갈등을 유발시켜 줄 악역들은 필수요소다. 하지만 그 악역을 최소화해서  가보자는 게 우리 목표 중 하나였다. 그 악역들을 현실에서 만날 법한 캐릭터로 꾸리고, 그런 갈등마저도 되도록이면 빨리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불편한 느낌이 오래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시청자들이 마음 편하게 발 뻗고 볼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들고 싶었다.”

-주1회 시즌제 드라마를 시도했다. 어떤 강점이 있었나.
“이제 주 2회 드라마는 다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2개씩 했었던 전작들은 어떻게 해냈던 건지 지금으로선 상상도 안 간다. 아무래도 현장의 피로함이 줄어드니 그 여유가 결국 다시 현장의 효율로 돌아오게 된다. 매회 그 어려운 밴드곡들을 위해 연기자들에게 그렇게 여유 있는 연습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주 1회 방송이라는 형식이 준 여유 덕분이다. 시즌제의 가장 큰 강점은 ‘내적 친밀감’이 아닐까 싶다. 제작진에게 가장 큰 숙제는 1회다. 1회에서 드라마의 방향성과 캐릭터들을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늘 큰 고민인데, 시즌제에선 시즌1을 제외하고는 그 고민을 생략하고 시작할 수 있다. 그냥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고 이미 친한 캐릭터, 익숙한 내용들이다 보니까 쉽게 받아들이고 접근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 배우들간의 내적 친밀감도 2년여의 시간 동안 두텁게 쌓이다 보니 시즌2는 훨씬 더 촘촘한 케미로 이어질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로맨스 라인을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익준이랑 송화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저희가 가장 잘 해왔던 색깔이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의 엇갈림, 그 가운데서 애타는 마음과 결국엔 절절하게 이루어지는 스토리 축은 워낙 ‘응답’ 때부터 많이 보여줬던 색깔인데, 그때보다는 더 연한 색깔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간의 케미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시즌1과 시즌2 전체의 축이 되어줘야 했던 러브라인이라서 그 적당한 밀도를 지켜가는 데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시청자들도, 캐릭터들도 서서히 물들도록 하려고 했다. 그래서 찍으면서 좀 과하다, 눈빛이 진하다, 너무 멜로 느낌이다 하는 것들을 걸러내고 조금 더 천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로맨스가 완성되는 과정만으로 봤을 땐 시즌1의 가장 큰 축이 겨울ㆍ정원이었다면 시즌2의 큰 축은 석형ㆍ민하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PD. [사진 CJ ENM]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PD. [사진 CJ ENM]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두고 IP 전략의 성공이라는 얘기가 많다. 특히 시즌1과 2사이에 ‘하드털이’를 매주 공개했고, ‘슬기로운 캠핑생활’ 제작도 이어졌다.
“시청자 입장에서 시즌1 12회 이후 13회(시즌2 1회)를 1년 동안 궁금해하며 기다려야하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어떤 보상을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하드털이’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보통은 드라마에서 못 보여드렸던 장면은 블루레이나 DVD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한정적인 분들이 보시는 것보다는 공개적으로 시즌 2를 기다리는 많은 시청자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매주 하나씩 편성이 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근데 한편으론 너무 재미있었다. 십년 만에 예능을 하는 셈이었는데, 처음엔 내가 십년 만에 자막을 뽑을 수 있을까, 예능 감이 떨어져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다 보니 예전에 그 세포들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할 때보다 더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슬기로운 캠핑생활’의 경우는 정말 순수히 배우들로부터 시작된 콘텐트다. 시즌2 준비과정과 겹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콘텐트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 그렇게 순수한 진심으로 만들면 큰 기술 없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출장 십오야’ 같은 다른 줄기로도 확장돼 갈 수 있다는 점 등을 목격하면서 수 년간 쌓아왔던 많은 편견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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