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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탄소중립 급가속…재계 “제조업 현실 고려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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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15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목표만 있고 ‘어떻게’가 없다.” 8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와 관계부처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상향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NDC 40%는 2030년까지 국가 전체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준연도에서 2030년까지의 연평균 감축률을 고려할 때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는 매우 도전적인 것”이라며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감축률은 4.17%로, 영국과 미국의 2.81%나 유럽연합(EU)의 1.98%보다 높다.

연평균 감축률 4.17%, EU의 두 배 넘어

이번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가 40% 이상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지 한 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중간 점검 성격이다. 이 목표 상향은 탄소 ‘제로(0)’,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향해 가속 페달을 더 밟겠다는 의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러나 전문가들은 NDC 상향안에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부문이 공란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가장 큰 숙제는 비용이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 의뢰로 국회입법조사처가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탈(脫)원전을 전제로 한 현 정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실행하면 앞으로 30년간 전력 생산 비용 누적 손실은 1067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양이원영 무소속 의원은 “천문학적으로 부풀려진 터무니없는 수치”(지난달 27일)라고 반박했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기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현상) 대응 시스템 구축 비용을 고려한 가중평균비용, 30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실질 이자율),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에너지 저장 장치(ESS)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1000조원은 오히려 크게 저평가된 수치”라고 주장했다.

1000조원이든 그 이상이든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 전기요금으로, 또는 세금으로 결국 국민이 충당해야 할 비용이다. 올해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시행에 들어갔다. 전력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연료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비교적 값이 싼 화석연료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서 앞으로 전기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우리나라에 비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큰 유럽 등 선진국은 이미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에너지 비용이 올라가는 걸 뜻한다.

재생에너지 설비에 주원료로 쓰이는 구리·알루미늄 등 원자재 값이 치솟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올해 유럽 지역에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며 풍력을 통한 전기 생산량이 급감했고, 대체 에너지로 천연가스 수요가 몰리며 역시 가격이 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까지 겹치며 그린플레이션은 전 세계 물가 난을 고조시키는 변수로까지 커졌다.

최태원 회장 “기업 부담 커, 정부 지원을”

탄소중립 비용 청구서는 또 있다. 세금이다. 현 정부는 물론 여권 차기 대권 주자 대부분이 탄소세 신설에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빠져 있는 ‘어떻게’는 비용만이 아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줄이려면 국내 전력 생산 구조부터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을 줄여나가는 탈원전 정책까지 병행하기로 한 상황이라 수술 범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감축 목표만 제시했을 뿐 어떤 발전소를, 몇 기 줄일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40%를 달성하려면 석탄화력 비중을 현재의 41.9%에서 21.8~15%까지 낮춰야 하는데, 추가적으로 앞으로 10년간 적용되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제시된 것보다 15~21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폐쇄해야 한다”며 “산업부는 대책은커녕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노동석 연구위원은 “탄소중립이 꼭 가야 하는 길인 것 맞지만 그만큼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해야 할 텐데 제대로 된 비용 추산,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전력 시스템 변화 문제 해결책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무책임하게 목표만 설정하며 오히려 탄소중립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경영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지금보다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이려면 수소환원제철,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의 미래기술이 필요한데 2030년까지 이 기술들이 개발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현재 기술수준과 감축여력을 고려해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8일 “어렵지만 함께 가야 할 길”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 5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경제 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생태계 조성, 공정한 전환 지원 등 3가지 측면에서 기업 부담을 최대한 덜기 위해 내년도 탄소중립 예산을 금년보다 63% 증액된 약 12조원으로 편성하는 등 적극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은 “기업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내년에 조성 예정인 기후대응기금과 연구개발(R&D) 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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