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선후보끼리 현피?”…국민의힘의 민낯, 국민이 낯뜨겁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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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선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 중앙포토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선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 중앙포토

지난 6일 오후 정치권에는 전날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TV 토론회가 끝난 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다퉜다는 취지의 ‘지라시’가 돌았다. 삿대질을 했다는 둥 큰 소리를 냈다는 둥 눈을 의심할 내용이었다. 수많은 선거 토론을 지켜봤지만 토론 뒤 후보끼리 이런 식의 시비가 붙었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머잖아 지라시의 내용이 일부 사실인 걸로 드러났다. 신체 접촉이 있었는지를 놓고 주장이 엇갈리긴 했지만 두 사람이 토론 뒤 말을 주고받으며 기분이 상했던 건 분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뭐야? 대선 후보끼리 현피(온라인상에서 시비가 붙은 뒤 실제 만나 싸우는 일)도 뜨는 거야?”라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왔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낯뜨거운 수준의 공방전으로 흐르고 있다. TV 토론 때 윤석열 전 총장이 세 번이나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사실이 지난 2일 드러난 이후 무속·주술 대선 공방이 벌어졌고, 급기야 지난 6일엔 항문침 전문가가 누구와 가깝느냐를 두고 캠프 간 논평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7일엔 윤 전 총장이 유 전 의원에게 직접 보라고 말했던 ‘천공스승님의 정법 강의’라는 유튜브 콘텐트를 놓고 “미신이나 점에 관련 된 게 아니다”(윤석열 전 총장)라는 입장과 “이런 유튜브 (동영상) 볼 시간에 정책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유승민 전 의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런 류의 공방이 벌어진 지 7일로 벌써 엿새째다. 듣기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귀가 아프기 마련인데 조선 왕조 때나 있었을 법한 논쟁이 야당 유력 대선 주자들 사이에 벌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니 “조선 왕조에서도 왕궁에서는 주술을 금했다. 정치가 장난인가. 그렇게 절실하면 각 캠프에서 아예 돼지머리 상에 올리고 대권 기원 고사를 지내든지”(진중권 전 교수)라는 일갈이 나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 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린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지난 1일 MBN 주최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5차 TV 토론회에서 윤 전 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1대1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 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린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지난 1일 MBN 주최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5차 TV 토론회에서 윤 전 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1대1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선 일관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내년 3·9 대선에서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원한다는 응답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원하는 응답을 앞선다. 동시에 또 하나의 흐름은 정권 교체론 우세 흐름에도 양자 대결에선 야당 후보가 얻는 지지율이 여당 후보보다 더 낮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의뢰로 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 3~4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에 투표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51%였지만 대선 양자 대결에선 어떤 국민의힘 후보도 지지율 40%에 미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답은 간단하다. 전문가들은 “야권이 터를 잡고 있는 정치적 토양에 비해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는 건지가 안 보인다며 비전의 빈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령,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정책을 비판한다. 하지만 ‘기본소득 프레임’을 부수고 넘어설 만한 정책 상품이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닥치고 정권 교체’란 공통 구호에 ‘공정과 상식’, ‘부자에게 자유를, 서민에게 기회를’ 등 손에 잡히지 않는 외침들이 요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세웠던 ‘사람이 먼저다’만큼이나 추상적인 내용들이다. 이런 벙벙한 비전·정책의 공간을 역술이나 점괘, 항문침과 같은 키워드들이 대신 채우고 있다.

많은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이번 대선의 화두는 ‘비호감의 대선’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대선 주자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역대급으로 높다. 어느 후보에도 마음을 주고 있지 않은 부동층 비율 또한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속·주술 공방까지 보고 있자니 차라리 이런 민낯을 몰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도자는 때론 실제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보여야 할 때가 있다. 지도자로서 신뢰가 있어야 공동체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프론트맨은 가면을 벗기 전까지 냉혈한이었다. 그러나 가면을 벗으니 그도 그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수준 낮은 공방의 수렁에 빠져 있는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에게 감히 제언한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가면을 쓰시라. 이런 민낯을 보는 국민이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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