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플립 대기만 4주라니…위기의 삼성폰, 8가지 이유[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14:19

업데이트 2021.09.30 00:02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광고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광고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2017년 애플은 아이폰6 발화 문제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과 매출이 급락하자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중화권 경영총괄이사’라는 자리를 신설하고, 중국 선양 출신 엔지니어인 거웨(葛越) 부사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

거웨는 애플의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임원이었다. 당시 미국과 중국 언론은 “중국 정부와 더 끈끈한 관계를 맺기 위한 애플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애플의 점유율은 회복했고, 화웨이 빈자리까지 공략하면서 중국 프리미엄폰 시장의 강자로 입지를 굳혔다.

화웨이에 밀려 중국 내수 시장에서 ‘2군’ 취급을 받던 샤오미와 오포·비보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본격화하자 ‘총공세’로 전환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을 확대하고, 카메라·배터리 성능을 키운 5세대(5G) 폰과 중저가폰을 쏟아냈다. 그 결과 이른바 OVX(오포·비보·샤오미)는 중국 1~3위 업체로 컸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빅5로 부상했다.

올 2분기 지역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그래픽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올 2분기 지역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그래픽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전자는 어떤가. 최근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에 관해 얘기를 나눈 시장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삼성에는 빅 피처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동의했다.

실제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과 경쟁력은 예전만 못하다. 중국과 인도‧북미‧유럽 등 빅4 시장은 물론 동남아와 중남미, 중동‧아프리카 시장에서도 삼성의 점유율은 하락세다.

미국 제재에 따른 화웨이 몰락의 열매는 중국 브랜드와 애플이 대부분 챙겼다. 사진은 화웨이 로고. [연합뉴스]

미국 제재에 따른 화웨이 몰락의 열매는 중국 브랜드와 애플이 대부분 챙겼다. 사진은 화웨이 로고. [연합뉴스]

왜 이렇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크게 봐서 8개 포인트가 미흡하거나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화웨이 몰락의 ‘열매’를 경쟁사에 내준 게 뼈아프다. 화웨이의 글로벌 점유율은 지난 1년 새 20%에서 4%대로 추락했다. 하지만 화웨이의 빈자리는 대부분 샤오미‧비보‧오포 등 중국 업체와 애플이 챙겼다. 2% 안팎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LG전자의 철수 때도 국내를 빼고는 삼성전자가 차지한 몫은 작았다. 익명을 원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화웨이 몰락과 LG 공백이라는 시장 대변동기에 삼성이 뭘 했는지 떠오르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둘째, 삼성은 점유율 0%대로 추락한 중국 시장에서 이렇다 할 회복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공개한 갤럭시Z 시리즈가 중국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전체 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폴더블폰으로 반전을 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더욱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을 포기하고 글로벌 점유율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및 출하량.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및 출하량.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셋째, 프리미엄폰과 5G 시장 부진을 타개할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삼성의 플래그십 기종인 갤럭시S 시리즈는 이제 연간 3000만대 판매도 보장하기 힘든 모델이 됐다. 1억 대 이상을 너끈히 파는 애플 아이폰 시리즈와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미 대세가 된 5G폰 시장에서도 삼성은 올 2분기 글로벌 5위에 머물렀다.

넷째, 세계 1위라는 ‘바잉(Buying) 파워’에도 삼성은 공급망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됐다. 특히 올해는 부품 부족과 생산 차질로 출하량이 급감했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대신해 승부를 건 갤럭시Z 시리즈는 수요 예측 실패와 부품 부족으로 구매자들이 3~4주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부품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지만, 애플보다 삼성이 받은 타격이 더 컸다는 점은 삼성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다섯째, 원가 경쟁력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삼성은 수년 전부터 스마트폰 위탁생산(ODM) 등을 늘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가성비(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에서는 중국 업체에 밀리고 있다. 평균판매단가(ASP) 등 수익성 면에선 애플이 삼성을 압도하고 있다. 오히려 ODM 확대로 품질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부품 시장에서 협상력만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섯째, 카메라와 배터리 등 스마트폰 구매 요인별 전략도 미흡하다. 중국 업체들은 강력한 배터리와 카메라 성능을 앞세우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지만, 삼성 폰에는 뾰족한 마케팅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일곱째, 스마트폰 생태계 구축 전략은 낙제점 수준이다. 운영체제(OS) 분야에서 삼성의 ‘타이젠’은 사실상 실패했고,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도 시장 5위에 머물러 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비하면 ‘갤럭시스토어’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경쟁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쟁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여덟째, ‘소비자 락인(잠금)’ 전략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애플처럼 한 번 아이폰을 쓰면 ‘아이폰 생태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락인 전략이 삼성엔 부족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들고나온 ‘아이폰 쇼크’의 충격에서 불과 5년 만에 벗어나 시장 1위에 오른 ‘저력’이 있다. 이른바 중국 7군단(샤오미‧오포‧비보‧화웨이‧원플러스‧리얼미‧아너)의 공세와 애플에 맞서 여전히 글로벌 시장 1위를 지키는 ‘전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저력과 전력을 뒷받침할 ‘전략’의 부재는 그래서 더 아쉽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부터 스마트폰을 포함한 무선사업부 경영진단을 하고 있다. 어떤 진단을 내렸고, 어떤 처방을 통해, 어떤 변화를 보여줄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삼성에서 노키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판을 바꿀 수 있는 사업 전략과 인력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변한다고, 변했다고 말만 하면 믿겠는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한다는 말도 필요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