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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고 살았는데 공로상 같아 좋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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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6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과 아내 채령 여사. [뉴스1]

지난 6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과 아내 채령 여사. [뉴스1]

“영화가 좋아서 그거 쫓아서 살았어요.”

내년 데뷔 60주년을 맞는 임권택(87) 감독의 말이다. 6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임 감독은 이튿날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가장 최근작 ‘화장’(2014)까지 102편을 찍은 감독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제 끝난 인생에서 이 뭐 공로상 비슷하게 받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지만, 더 활발하게 생이 남은 분들에게 가야 할 상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한국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고 진정한 아버지며 스승·큰 어른·표상 같은 분.”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그를 이렇게 말했지만 임 감독은 “까불고 살았다. 그 인생이 뭣인가, 착각 때문에 헛바퀴 돌면서 많이 살아내지 않았나. 지금 나이 들어서 제대로 코스 잡았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1962년 일제에 맞선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그린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했다. 이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추구하면서도 흥행을 놓치지 않았다. 판소리꾼의 한을 그린 ‘서편제’(1993)는 한국 영화 최초 서울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세계 영화제 최초 기록도 잇따라 세웠다. 2002년 ‘취화선’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첫 수상을 했고 2005년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을 받아 거장의 명성을 확인했다. 배우 강수연은 그의 영화 ‘씨받이’(1987)로 아시아 배우 최초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상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기보다 꼭 빚진 것 같았다”고 했다. “잔뜩 기대를 보내고 있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거를 일궈내지 못한 열패감 이런 것도 있었고. 그런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조금 체면이 서게 됐는데, 영화제가 이렇게 나를 옥죄고 그랬던 것 같아요. 좀 영화 인생을 훨훨 살았으면 내 작품도 참 훨훨 상당히 활기찼을 텐데 만날 옹졸하게 어떤 틀 속에서 그놈의 상…. 어이구, 아 지금까지 그래도 잘 지내왔어요.” 후련하게 웃으며 긴 세월 감춰온 부담감을 털어놨다.

수상 무대에 호명됐을 때 임 감독은 자신의 영화 ‘요검’(1971)의 배우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아내 채령 여사를 불러 꽃을 선사했다. 간담회에서도 영화 인생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 아내를 꼽았다. “내가 칭찬을 한 번도 안 해서 늘 꾸중 듣고 사는 우리 집사람, 이런 자리에서 칭찬하고 싶습니다. 신세 많이 졌고요. 별로 수입도 없어서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 잘 견뎌줘서 아직도 영화감독으로 대우받고 살게끔 해준 우리 마누라한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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